현대 민주주의는 몸살을 앓고 있다. 낮아지는 투표율과 정치적 냉소주의, 집단 이기주의와 여과되지 않은 의견의 무절제한 표출, 다양한 사회갈등과 폭력사태, 토론과 절차가 무시되는 비합리적 의사결정 등 대의민주주의의 숱한 취약점들이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한국정치에서도 그 파행양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표류하는 국가주요정책, 사회적 욕구의 분출과 조정의 부재, 한-칠레 FTA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에 정부는 우왕좌왕하거나 결정을 번복하고 있다. 만연된 부정부패와 정치인들의 연이은 구속을 보노라면 민주주의는 뒷전이고 검은 돈(?)이 이나라 정치를 주도하는 것 같다.
정치란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심의와 토론과정을 거쳐 단일한 의견으로 모아 정책을 입안하는 일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은 개인이 자신의 운명과 이익에 관련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치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제대로 뽑는 일이다. 올바른 정보와 현명한 판단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문제다. 다음은 중요한 국가적 사안이 있을 때 어떤 방식을 통해 의견을 수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즉, 토론과 심의 그리고 결정에 관한 정치과정의 문제다. 끝으로 선출된 공직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고 정치적 야합을 일삼거나 결과적으로 국익에 해를 끼칠 가능성을 견제하는 일이다. 권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 문제다. 어느 쪽이든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는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왜곡된 정치행태를 개혁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이 전자민주주의다. 2000년 총선에서 보여준 총선 시민연대의 온라인상의 낙천, 낙선운동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2002년 대선 때의 인터넷을 활용한 ‘노사모’도 엄청난 괴력을 발휘했다. 우리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정보화도 마냥 장미빛은 아니다. 아무리 정보의 보고(寶庫)라 해도 사용자의 올바른 이해와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2002년 대선 기간에 보여준 인터넷 공간은 정확한 정보전달과 정제된 의견들도 있었지만 굴절된 정보와 사이버 흑색선전, 무차별비방이 난무했다. 특히 개별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원된 소위 ‘알바’들이 인터넷 공간을 도배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정보의 보고가 아닌 진흙수렁 속에서 개인들이 매몰되었다. 정보화가 곧 전자민주주의의 보장은 아니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컴맹들의 소외문제와 정보화를 통한 기술적 조작 가능성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특히 정보화에 따라 여론이 여과되지 않은 채 정치과정에 투입되어 중구난방이 되거나 중우정치가 될 가능성, 즉 사이버 포퓰리즘(cyber populism)은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설익은 논리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정치행태는 후진국 형 병소다.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또 다른 ‘포퓰리즘’의 변종을 경계한다. 이미 여당은 ‘국민참여 0145’를 만들었고, 야당의 ‘좋은 나라 닷컴’도 개통했다. 게시판에는 특정정당을 지지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전자민주주의가 꼭 양지바른 쪽으로만 갈 수야 없다 해도 대의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음습한 악습들은 없어져야 한다. ‘사이버 포퓰리즘’에 현혹되지 않을 유권자들의 혜안이 필요한 때다.
제갈 태 일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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