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맞는다. 교육부 장관이 바뀌면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대학입시제도도 고치며 교사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새로운 학교문화 정착을 위한 제도적 보완을 서두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우선 장관이 바뀔 때마다 메뉴(?)간판을 갈아다는 식의 의례행사가 아니기를 바란다. 좀 심한 비하(卑下)같지만 그동안 교육부 정책이 너무 일관성 없이 우왕좌왕했기 때문이다.
먼저 정부가 대학입시제도로 골머리를 썩일 일이 아니라 선진국처럼 대학의 자율로 맡기면 될 일이다. 그게 왜 불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교육의 시장원리가 자유경쟁이라면 굳이 정부가 대학입시에 오지랖이 넓게 관여할 이유가 없다.
대학의 평가도 오류에 빠져있다. 우수한 학습결과로 대학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지원자의 대학입시성적으로 서열이 매겨진다. 그 대학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알 길이 없고 명문대학에 합격하는 것으로 평생이 보장된다. 이와 같이 대학교육의 내용이 빠진 대학평가는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일류대학 간판이 교육의 국제경쟁력과 무관한데도 이런 그릇된 잣대가 지금까지 우리교육을 오도해 왔다.
대학평가의 이런 모순을 고치지 않는 한 중등학교 교육은 파행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교장이 소신껏 일할 수 없는 체제적 한계이며 국가의 정책적 개선이 시급하다.
우리 교육이 꿈나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획일적으로 가지 치는 정원수를 키우고 있는 한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성이나 빌게이츠의 창의성은 기대할 수 없다. 교육은 경쟁이 치열할수록 좋다는 생각도 맹목적이다. 마음을 열고 함께 토론하며 문제해결능력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일열로 세우는 획일적 입시제도로 교단이 삭막해지고 선생님들의 사기도 떨어지며 교실은 살벌해졌다. 학교폭력에 집단 따돌림이 열병처럼 번지고 있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아이들의 항변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급기야 교장이 학생들의 왕따 문제로 자살하는 비극을 불렀다.
교육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on:의사소통)에 있다. 교사가 교실에 갈 때는 첫사랑의 연인을 만나러 가는 마음이라야 한다. 이 마음이 학교문제를 푸는 열쇠다. 학교는 인연을 형성하는 장(場)이지 죽기 살기로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결투장이 아니다. ‘사랑이 넘치는 교실’로 만드는 일이 교장의 기본책무다. 왕따를 줄이는 처방일 수 있다.
모든 학교행정을 오픈(Open)하고 간부교사 임명도 교사의 추천을 받으면 신뢰가 형성될 것이다. 이는 교사 상호평가 가 이루어져 긍정적인 학교문화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학기 초에 전교원이 마주앉아 전년도 반성과 새 학기의 학교교육계획을 세우는 일도 교장이 챙겨야할 진취적인 리더십이다.
학교교육이 지식전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컴퓨터의 몫이다. 또한 인간의 능숙한 기능을 숙달하는 것으로 경쟁시켜서도 안 된다. 그것은 로봇의 영역이다. 미래교육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창조성 개발에 있다.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문해력(文解力)을 기르는 교육에 그 해법이 있다.
교장은 적어도 이만한 안목과 비전을 교육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신념과 지성을 갖추어야 한다.
제갈 태 일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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