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9일 용산 주한미군 기지 사령부에서는 의미 있는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주한미군사령부와 한 인터넷 매체가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였습니다. 인터넷을 공유하는 한국의 네티즌들과 주한미군의 최고책임자인 러포트 사령관이 토론자로 참석한 이 자리는 초유의 행사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땅에 미군이 주둔한지 50년이 넘었지만 단 한번도 주둔군의 최고책임자가 주둔국의 국민을 상대로 이해를 구하고 의문에 답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당당히 한미행정협정의 불평등 구조와 모순을 지적하고 포르말린 한강방류의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 할 때는 참으로 대견했습니다.
일부의 불만처럼 형식적이고 원론적인 답변이었다 해도 결과의 실리를 떠나 그러한 자리가 마련되고 요구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커다란 의미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열띤 토론이 진행되고 있는 관람석 앞자리에서 시종일관 진지하게 그 광경을 참관하고 있던 젊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토론자가 아님에도 러포트 사령관의 배려로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는 저 젊은 여인은 누구일까. 인터넷의 기사는 다음과 같은 사연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2002년 서해교전 당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미망인 김모씨(30)였습니다.
남편이 전사한 후 여러 곳에서 위문과 격려가 답지했고 한동안 관심을 보내주었지만 그 이후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2003년 서해교전 1주년 기념식은 형식에 그치고 식이 끝난 후 병사의 유가족은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를 띄운 이는 우리나라의 장군이 아닌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이었습니다. 형식적이라거나 인사치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국 병사의 유가족에게 아픔을 위로하는 편지를 직접 쓴다는 것은 사령관의 위치에서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이 사령관 개인의 성향이든 혹은 애써 의미를 축소하여 정치적 제스처라 해도 그가 보여준 관심을 왜 우리는 보여주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던 병사와 그 아픔보다 몇 배의 고통으로 살아가야할 가족들에게 보상과 더불어 육필의 따뜻한 편지 한 장이 동봉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물질과 명예로 상처를 다독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치유하고 새살이 돋게 하지는 못합니다. 금전과 보상은 그 아픔에 대한 대가는 될 수 있어도 “나도 당신처럼 아픔니다” 라는 동병의 상린은 되어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친미와 반미의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인간적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한통의 편지가 러포트의 편지가 아닌 상과 하의 위치에서 책임과 임무를 분담 받은 모든 사람에게 띄우는 우리의 편지였으면 합니다. 법으로 정한 보상 너머에 더 소중한 것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며 잊지 않을 거라는 다짐과 생명을 바친 사람과 남은 가족들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늘 함께 하고 있다는 작은 징표로 말입니다. 그것은 이 험한 세상을 참으로 살맛나게 가꾸는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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