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투명한 창’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매개체를 이용한 의도된 세상을 보여준다. 미디어는 현실을 단순히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재현을 한다.
뉴스나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에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일지라도, 미디어제작은 사건의 선택과 조합, 사건을 이야기로 만드는 일, 그리고 인물을 창조하는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하여 미디어의 재현은 필연적으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 따라서 미디어는 ‘객관적’이지 않고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데이비드 버밍험교수 著 미디어 교육.102쪽)
국가를 지키고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며 국민에게 약속한 사람들이 정치의 기본틀을 무시하고 고함지르고 끌어내고 울부짖는 저질적인 행태가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큰일을 겪을 때마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미디어들의 호들갑은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할 정도로 흥분하고 도발적이며 비이성적이다. 사안의 중대성과 영향을 생각해서 여론을 주도하는 측에서 냉정했으면 좋겠지만 갈수록 흥분을 부추기는 의도적 경향이 있다.
조선의 역사는 패거리 정치의 반복적인 역사였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권을 잡는 측이나 잃는 것도 모두가 자신의 의견은 옳고 다른 편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되고 멸시되었다. 그 시대에는 왕이라는 특정인을 움직이는 데 갖가지 수단과 야비한 방법으로 정권을 탈취하는데 동원되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목숨과 국운을 회복불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라는 퇴보되고 세상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지금은 위정자들이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볼모로 권력을 잡을려고 서로를 모략하고 다투고 있다. 히틀러는 음악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탁월한 선전술과 맹목적인 충성을 하는 어떤 힘으로 정권을 굳건히 했다. 요즘은 어떤 매체가 가장 효과적이고 어떤 이미지가 대중에게 의도한 표상으로 비추어질까.
큰 일이 났는데도 텔레비젼에서는 한가로이 재미있는 드라마나 쇼장면을 보여준다면, 곧 안정될 거라면서 대단치 않게 치부한다면?, 울부짖고 파괴적이며 공격적인 격렬한 집회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폭력과 광기가 넘치는 곳만 찾아다닌다면?.
가령 대형 건물에 불이 났을 경우 모두가 혼란스럽고 당황해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을 때 들어찬 군중은 어떻게 판단을 할 것인가. 혹시 몇몇의 의도된 사람들이 앞장서고 떠드는 쪽으로 향하지 않을까. 만약 그곳이 더욱 불이 활활 넘치는 곳이라면 그 희생자는 누구가 될 것인가?
김 긍 연
<미디어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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