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난이 심각해지면서 여러가지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렇게나 나뒹굴던 고철이 절도범들의 표적이 되고 도로가에 멀쩡하게 설치되어있던 맨홀뚜껑이 어느 날 아침 없어지는가 하면, 침몰한지 한참 지난 고철운반 화물선까지 인양한다고 법석을 떠는 걸 보면 요즘 고철은 보물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중반 톤당 15만원선이던 고철가격이 최근에는 35만원까지 치솟았다. 그나마도 물량을 구하기 힘들어 주물업체를 비롯한 관련 중소기업들의 아우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세계경기 회복으로 원자재 수요가 늘어나고 중국이 철강산업의 설비투자를 ‘천문학적’으로 늘리면서 전 세계의 고철을 블랙홀(black hole)처럼 빨아들이는 등 철강원자재의 수급이 불일치한 데 있다. 그러나 이런 혼란에 편승하여 일부 얌체업자들의 사재기와 매점매석도 사태악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하니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물론 매점매석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중 한 사람인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도 가난한 선비 허생이 매점매석을 통해 큰 부자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신용으로 빌린 만냥으로 과일을 모두 사들인 후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드리지 못하여 가격이 열 배나 치솟자 이를 되팔아 큰 돈을 벌고, 제주도의 말총을 매집하여 망건 값이 크게 오르자 또 다시 많은 이윤을 남긴다는 내용이다. 매점매석이 소비자에게 주는 고통을 모를 리 없는 당시 독자들이 주인공의 부당한 행동을 그나마 보아 넘길 수 있었던 것은 그 대상이 당시 지배층이던 양반들이 주로 소비하던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풍자소설로서의 재미를 한층 더하는 요소였던 것이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매점매석도 일종의 투기이고 투기가 꼭 나쁘다고 할 수 없기에 학자들간에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애써 저축해 모은 돈이든, 끌어 모은 빚이든 가용한 재산을 오늘 써버리지 않고 미래의 더 많은 소비를 위하여 다른 자산으로 바꿔놓는다는 점에서 투기는 투자와 다른 점이 없다. 특히 투기가 가격과 소비의 불필요한 부침(fluctuation)을 줄일 때도 있고 현재의 낭비를 막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매점매석은 상품의 공급을 제한하여 폐쇄적인 시장을 형성함으로써 일종의 독점시장을 만든다는 데 문제가 있다.
독점시장에서는 공급자가 가격결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량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동일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시장수익을 상회하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 만큼의 초과비용을 지불해야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된 데 따른 후생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이 같은 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는 각종 공정거래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특별히 매점매석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생산활동을 저해하는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여 단속·처벌하고 있다.
매점매석은 굳이 범법행위라는 점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유지·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민의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라는 점에서 고철 절도범의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매점매석으로 인한 피해가 내수부진과 채산성악화로 시름에 잠겨있는 중소기업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서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도 없다.
원자재난에 계속되는 경기부진으로 어려운 때이지만 경제주체들이 보다 성숙한 공동체의식을 보인다면 멀지 않아 모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윤 홍 중
<한국은행 포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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