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혼란스러워진 것은 대통령의 권위를 비롯한 각종 권위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글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60년대 말 미국 시사주간지에서 읽었다. 그당시 세계 각국이 60년도 초에 있었던 우리나라 4·19학생의거의 영향을 받은 탓이었던지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고 혼란이 계속되자 그 잡지에서 학생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원인분석을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였던 것 같다. 그 중 어느 철학자의 말이다.
사회의 각종 권위 즉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권위, 스승의 제자에 대한 권위, 부모의 자식에 대한 권위 등이 떨어져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젠하워가 대통령(34대.1953~1961)으로 당선되었기 때문으로, 전임 대통령들이 미국의 명문대학 아이비 리그(Ivy Lcague)출신인데,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권위가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십 오륙년이 흐른 그 시점에 사회가 그렇게 된 것이라 진단하였던 것이다.
그것을 읽으며 우리는 워낙 오랜 기간 철권 폭압통치 정부 아래서 짓눌리며 살아온 탓으로 권위와 권위주의를 구별못하고 권위라는 말만 나와도 무조건 저항하고 싶던 시절이라, 개인주의가 충만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 인권이 완전하게 존중되는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 미국에서 권위를 찾고, 그것이 무너져 혼란이 왔다고 하는지, 이외의 그 진단에 크게 놀랐던 것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한참 흐른후에야 사회질서 유지에는 회초리와 힘에 의해서가 아닌 덕으로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권위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미국사회의 놀라운 점은 다만 명문대학이 아닌 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의 권위가 떨어지기 시작하여 사회의 각종 권위도 떨어졌다고 진단한 것이다. 또 하나 우리같으면 시시해 그냥 넘길 대통령의 거짓말 한 마디가 탄핵의 빌미가 되는 사회인점이다.
닉슨·클린턴 전 대통령이 탄핵정국에 휘말리게 된 사건이 좋은 예로서 도청하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몰랐다고 한 거짓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서도 없었다고 부정한 거짓말 때문이었다.
대통령에게는 국회의원이나 주지사에게 바라지 않던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다가 외세의 도움으로 겨우 회복한 마당에 대통령이 죽을 때까지 물러나지 않으려고 노욕을 부리다가 결국 학생들의 데모로 쫓겨났으며 그로인한 사회적 혼란을 바로잡고 ‘구악’을 일소하겠다며 집권했던 사람이 바로 앞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그 역시 장기집권을 꾀하다 민중의 저항을 받아 결국 부하의 총탄에 맞아 비명에 갔다.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졸지에 가장을 잃은 가족들처럼 되었고, 총으로 집권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다. 그 후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을 수 있게 되었지만 과연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는 분들일까?
이런 나라에서 대통령의 권위를 논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가당찮아 보인다. 질서를 이만큼이나마 유지하고 중진국 대열에 든 것을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기적이 아니면 백성들 노력 덕분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예사로 민족성 운운하며 탓하는 것을 종종 보는데, 앞에서 말한 사실들을 이해하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존경을 받아 권위를 세울 수 있는 지도자가 있었더라면 더 높은 도약을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조 유 현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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