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정치낭인(浪人)들의 굿판을 별관심이 없는척하면서도, 촌부들의 술자리엔 자기들 나름대로 정치논리를 펴 갑론을박을 하며 술판의 흥을 돋운다.
선거기간 중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면서 한 표를 부탁하는 입후보자 말 속에나 청중을 모아놓고 합동 연설회 유세장의 지지를 호소하는 얘기 내용도 누구나 천편일률적으로는 이곳 주민들의 심부름꾼이요. 국가를 위해서 지역을 위해서, 자기 한 몸을 바쳐 지역민을 위한 봉사정신으로 지역일꾼이 되겠다고 열변을 토하는 것이다.
이제 해방이후 17번째로 망가진 바늘 때문에 같은 노래를 반복해 들어야만 하는 짜증스러움을 또 견디어야 하는가.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는 모양새로 봐서는 혐오감이 더해 어쩌면 증오의 대상으로 일상적 얘기를 하면서도 왜 스스로 이런 군상의 무리에 합류하기위해 그렇게도 안달을 하는지!
2500여 년 전 노나라에서 태어난 공자도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정치에 뜻한바 있어 그의 인생 말년에 이웃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자기의 정치 경륜을 펼쳐 보려고 한 때가 있었다. 이러한 공자를 보고 당시 노(魯)나라 사람들은 상갓집 개라고까지 혹평을 했다하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을 평가하는 것은 그렇게 후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정치인들을 마냥 나쁘게만 평가하는 것일까? 전직 국회의장을 하신 한분께서 16대 국회의원 중에서 60여명은 그런 대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의원이라고 했으니, 즉 20% 정도는 다시 국회에 보내도 좋으나, 나머지는 탈락시켜야 좋을 것 같다는 얘기다. 그러면 통계학적으로 보면 평범한 사람 가운데도 20% 정도는 그런 대로 괜찮은 사람 속에 들어가는데. 국회의원이라면 꽤나 유능하고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 중에서 엄선해서 뽑은 사람인데 불구하고, 일반인들과 비유해 특별히 나을 것이 없다면, 각 당의 공천 심사 기준에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정치낭인에서 금뺏지를 다는 동시에 신분상승은 당장 차관급 예우에다가 도장 찍는 업무가 없으니 책임질 일 없고, 돈이 궁하면 후원회를 열면 되고, 그 외에도 우리들 촌부가 생각과 상상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의 특별예우가 얼마나 있는가?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면 전직 장관에서부터 각계의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인생 최종목표가 국회의원 하기위해서 인생을 사는 것으로 착각하기가 쉽다. 아무리 그 자리가 명예스럽고, 관료위에 군림하고 주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할지라도, 개인과 소속정당의 이익이 국가나 사회의 이익과 충돌할 때. 후자를 택할 수 있는 양식인이 아니면 안된다.
미국 남북전쟁전 노예해방의 찬. 반을 자기 지역구 선거주민에 뜻에 반(反)하는 용기있는 정치가 다니엘 웹스터나, 토마스 벤튼 같은 양식을 가진자가 아니면 제발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지 말았으면 한다.
오늘날 형편없는 국회의원들의 모양새는 바로 이 부분을 분별 못하는 정상 모리배들에게 무대를 제공해준 우리 국민들의 탓이다. 그리고 유권자들도 이 부분에서 객관적으로 검증되고 뚜렷한 주관을 가진자에게 투표를 하는 슬기로움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최고의 충족요건은 당과 개인의 이익보다 먼저 전체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택하는 자들에게 우리 주권이 행사되어야 되겠다.
지금까지 우리의 선량을 계량(計量)하는데 정치 보스의 오랜 가신생활로 이름이 알려진 정치 낭인. 전직의 화려한 관료로서의 경력인, 유명인으로서의 경력만을 우선시하고 그들을 국회에 보냈었다. 그런데 50여년이 넘도록 그들이 국회에서 난장판을 이루며 국민과 민족의 앞날을 모르쇠로 일관한 채 다음번 선거 에도 국회의원 당선을 목적으로 하는 행패를 얼마나 보고 또 보고 살아왔는가.
우리 유권자가 깨어 있지 못하고, 지금까지 선거를 한 것처럼, 화려한 경력과 유명세만 믿고 투표를 하다가는 그들의 신분상승과 정치노름에 또 다시 그들의 고무도장 노릇을 할 것인가.
노 원 조
<선그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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