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이 무르익고 있다. 색색의 꽃들이 앞다투어 피고 있고 영일만의 바닷빛 또한 한결 부드럽게 느껴진다. 이 새롭게 뻗쳐오르는 새 생명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대자연을 달리는 것, 마라톤이 아닌가 싶다.
작년의 통일기원 해변마라톤대회 때의 일, 그 전해 5km 완주의 감격에 힘입어 지난해는 욕심을 내어 10km를 완주함으로써 내 나름으로는 제법 큰일을 한 셈이었다.
물론 10km를 거의 마칠 즈음인 골인 지점에 가까이 올 때는 숨이 목구멍까지 찰 정도로 너무나 힘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골인지점을 통과하고 숨이 차 헐떡이는 나에게 느닷없이 들이댄 지역방송의 마이크 앞에서 그만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10km완주의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숨을 헐떡이며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무심결에 내년에는 하프(21km)를 완주하겠노라는 엄청난 말을 해버렸던 것이다.
그 후 이 장면을 보신 많은 시민들께서 대단하다는 칭찬과 함께 꼭 완주하라는 다짐을 해두는 것이 아닌가!
큰일이 생겨버린 것이다. 10km도 겨우겨우 뛰었는데 하프인 21km를 뛴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할 것 같고,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시민들에게 거짓 약속을 하게 되는 꼴이어서 내가 만든 족쇄에 스스로 묶여 이래저래 진퇴양난의 시간을 보낸 다음 내린 결론은 용기를 한번 내어보자는 것이었다. 60대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라고 못할 것이 뭐가 있는가 하는 독한 마음으로 한번 뛰어보자 싶어 21km를 목표로 제법 훈련스케줄까지 세워서 얼마 전까지 연습을 해보았다.
그러나 얻은 결론은 역시 그것은 불가능하며 나의 무모한 용기임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무릎부위에 많은 무리가 오는 것 같고, 또한 제법 두둑하게 나온 뱃살을 안고는 21km나 되는 먼 길을 달리는 것 자체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몇 번의 연습을 통해 절감하게 되었다.
그렇다. 사람이 솔직해야지 괜히 정신없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던지지 말고 나의 분수를 지켜 금년에도 10km 완주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러한 나의 거짓말(?) 덕분에 뜻하지 않게 큰 소득을 얻게 되었다.
사실 나와 같은 연령층에는 10km 완주도 매우 힘이 드는 모양이다. 그러나 하프인 21km를 목표로 고민을 하고 연습을 하다가, 마음을 비우고 10km로 하향조정하고 보니 남들은 어렵게 여기는 10km가 나에게는 식은 죽 먹기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만큼 자신감과 만족도가 커졌다고나 할까. 설사 이루지 못할지라도 꿈과 목표만은 좀 스케일 크게 설정하는 것이 이래저래 좋을 성 싶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인생교훈을 이번의 하프소동(?)을 통해서 얻게 된 셈이다.
얼마 전 ‘새벽형 인간’이란 단어가 신문지상을 요란스럽게 장식한 적이 있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독서도 하고 취미생활을 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지칭함일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새벽형 인간은 새벽 세시반에 일어나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 고 정주영 현대회장이 아니었던가 싶다.
나 또한 젊은 시절부터 큰 어려움 없이 습관적으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여러가지 생활을 즐기고 있으니 전형적인 새벽형 인간 중의 한사람이라 하겠다. 매일같이 맞이하는 새벽이지만 새벽 여명은 늘 새롭고 경건하게 다가온다. 그러한 경건함 속에서 지역발전을 위한 기도와 나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한없는 마음의 평화를 갖기도 한다.
이어 찬 공기를 가르며 북부해수욕장과 장성동 뒷산을 조깅할 때의 상쾌함 이라든지, 모자라는 독서시간을 새벽시간에 보충함으로서 얻어지는 마음의 뿌듯함은 이 세상 어느 즐거움과도 견줄 수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육신이 건강하고서야 그다음 모든 것이 결정된다할 것이다. 비록 하프인 21km를 못 뛰어 시민들에게 본의 아닌 거짓말(?)을 드렸을지라도 오늘 새벽도 건강한 몸으로 달릴 수 있음을 감사하고 있다. 다가오는 4월 25일 통일기원 해변마라톤대회는 각계각층의 온 시민이 다함께 손잡고 뛰어보자.
그리하여 요즘처럼 살맛 안 나는 세상, 생활속의 갖가지 스트레스를 훌훌 날려 보내고 뽀빠이 이상용 아저씨의 사회로 진행되는 식후잔치에서 모처럼 함박웃음을 터트려도 보자. 이것이야말로 바로 포항사랑운동의 출발점이 아니겠는가.
정 장 식
<포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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