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선택의 존재다. 아무리 피해 달아나도 선택을 피할 수는 없다. 삶이란 순간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무엇을 선택하느냐? 에 따라 개인의 삶도 수준도 질도 변하는 법이다. 실패와 성공도 일순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선택을 포기한 사람은 이미 삶을 포기한 사람이다. 그만큼 선택은 우리의 삶에 있어 일상의 문제다.주인이 명령하면 무슨 일이나 열심히 일하는 노예가 있었다. 이 사람은 주인이 정해준 일과에 따라 밭에서 감자를 캐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어 밭 가운데는 감자가 산같이 쌓이게 되었다. 주인은 노예에게 커다란 구덩이 두 곳을 파고 감자를 저장하는데 한 구덩이에는 큰 감자를 넣고 또 다른 구덩이에는 작은 감자를 넣으라고 일러 주었다. 쉽게 일을 마쳤을 것으로 생각한 주인은 밭에 나가보았다. 그러나 노예는 감자 두 개를 양 손에 들고 머리만 갸우뚱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쉬운 일을 시켰는데도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노예에게 버럭 화를 내었는데 노예는 이렇게 말했다. “주인님! 어떤 일이라도 시키기면 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발 큰 감자와 작은 감자를 고르는 일만은 시키지 말아주십시오. 감자를 손에 들 때마다 이것을 왼쪽 구덩이에 던져야 할 지, 오른쪽 구덩이에 던져할지 결정지어야 하는 괴로움이 너무 커서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노예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존재다. 그들은 주인이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일이란 생소한 것이다. 주인이 시키는 일 외에는 더 할 것도, 할 수도 없다.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한 존재들이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결정과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 있다. 이것은 인간이기에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이후에 인간에게만 주신 특권이기도 하다. 사람은 개개인의 특성과 개성이 있듯이 결정과 선택의 권리도 각각에게 주어져 있다.
우리들 주변에는 주인들이 너무 많다. 즉 결정과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명령을 한다든지 간섭을 하는 무리들이 많아져 가고 있다. 소위 말하는 여론몰이라는 것이 그렇다. 여론몰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 될 수는 없지만 어찌되었던 작금의 상황은 선택의 주체인 나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심상치 않은 시대다. 자기 선택의 우월성만 강조하고, 다른 사람의 선택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아니면 틀렸다고 소리친다. 개인의 선택에 대해서 너무 쉽게 틀림의 잣대를 대고 있다. 그 결과로 소위 말하는 부동층의 사람들이 사회의 한 계층을 형성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의 판단은 개인이 선택할 문제다. 다수의 힘이나 권력의 힘으로 선택하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양극단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고, 흑백을 극명하게 대조시키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음이 불안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구덩이 두 개를 파 놓고, 어느 감자를 어느 구덩이에 넣어야 할지 모르는 노예와 같은 엉거주춤한 사람들. 자신의 주관적인 선택은 없고 시대의 흐름과 분위기에 편성하여 선택되는 일들이 빈번하게 증가되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도 교사들이 학생들의 자발적인 선택권을 무시해 버리고 교사 자신들의 사상과 이념을 주입시켜 한 면만을 보게 하거나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선택의 강요는 지나간 과거의 세대로 막을 내려서야 할 문제이다. 그럼에도 오늘 날 그런 문제가 재현되고 있다는 것은 병들어가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못내 마음이 편치 않다.
삶이란 개인에게 주어진 고유한 것이다. 고유한 것이기에 그만큼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그만큼 값지고 아름다운 것이기에 선택도 내 스스로 해야만 한다. 좌로나 우로 치우침 없는 중심 있는 선택이 필요하다. 자신의 인생을 노예로 살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선택하는 주인으로 살 것인가? 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때로는 다수의 노예들이 모여 있는 곳 보다는 소수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군중 속에서 노예로 살기보다는 소수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 훨씬 현명한 삶이다.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만이 소중한 자신의 삶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재 훈
<포항강변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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