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공한함과 청정성이 결여되고 있다. 지구 어느 곳에도 자연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없다. 지구 도처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본래의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물론 그 개발이라는 것은 인간생활의 편리를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편리라는 배후에 남는 것은 도리어 인간의 근본 고향인 지연의 훼손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비단 인간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깃들여 사는 모든 생명체의 안립까지도 위협하게 되어가는 지금 우리의 개발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계속돼야 하는 것일까.
인간의 심리 가운데는 문명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반면 과거의 미개 사회를 동경하는 마음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따라서 사회 학자들이 주장하는 그러한 사회 개념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로부터 한 번쯤은 벗어나고픈 욕망을 품는 것은 지나친 문명의 이기를 앞세우고 있는 가운데 거기에서 파생하는 갖가지 부작용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에서 개발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 속에 깃들어 살 수 밖에 없는 것도 불가결한 일이다. 여기에서 오늘날의 환경의 문제는 발생한다. 날로 심각해져 가는 공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물들이고 있는 것 같다. 잠시도 쉴새없이 오고 가는 차량들의 행렬, 거기에서 나오는 매연과 소음, 어디에서나 내비치고 있는 현란한 불빛과 원색의 혼란스러운 장식, 지옥철이라고 표현되는 지하철의 대혼잡, 귀가 멍멍한 음악(소음)소리 등등 참으로 정신없는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온통 사로 잡고 있다.
그 속에서 온전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신기로울 정도다. 집에 돌아와서도 예외는 아니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 등산을 하면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다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또한 오늘날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는 폐쓰레기의 문제는 우리의 환경, 즉 공기와 물과 땅 등 모두를 오염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특히 쓰레기 집하장이 아닌 산하에 널려있는 각종 오염물질은 그 방지대책이 없다는 데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러한 점에서 전국의 산하와 바다에 널려있는 위락시설의 쓰레기 관리는 철저한 관리가 요망된다. 한 번 훼손한 자연은 그 원상복귀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면서 그나마 인간이 살아남기 위하여 인간의 지혜로 짜낸 개념이 환경보존이라는 구호다.
생태계라는 개념과 그것의 균형을 위한 동작 원리들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실정에서 행해지는 환경보존운동은 또 다른 피해를 불러 일으켜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튼 언제부터인가 이제는 산업의 발달은 그것이 몰고 올 결과까지를 예측하는 방향으로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개발이 가져다 주는 정의 효과와 부의 효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인 것은 우리들의 자세이다. 산업의 발달로 인하여 가시적인 편리와 행복을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살아있는 모든 유정들이 살아갈 공간의 오염을 남겨 주었다.
산업이 발달하면 발달 할수록 그로부터 나오는 부산물은 증가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생태계의 원리가 인간중심적으로 편성되어 지는 한 아무리 환경보전을 외친다 해도 환경은 인간을 외면하기 어렵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과의 일체임을 부르짖는 화엄의 신토불이의 사상이라던가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한 몸이라는 동양의 자연관에 입각한 환경운동의 전개가 필요한 것이다. 운 붕(대성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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