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부산 발 경주행 버스 안은 소란함으로 가득 찼다. 평소 이 시간 버스는 거의 다섯 명 미만의 승객으로 아주 조용한 귀가길이다. 1시간 정도 잠을 청할 수도 있고, 차창 밖의 밤 풍경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잠기기도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 날은 달랐다. 피곤한 몸을 의자에 기대어 앉았을 때부터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문화 탐방을 간다는 대학생 일행 12명이 중간 좌석, 그리고 맨 뒤 좌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앉아 있었다고 하기 보다는 거의 버스 통로를 운동장 같이 뛰어 다니며 오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래도 그 어수선함은 참을 만 했다. 문제는 그들의 대화에 있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은 욕설로 시작이 되고 마무리되었다. 일반 승객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남녀학생이 끝도 없이 욕설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희희 낙낙했다. 그들은 감포와 보문단지 일대의 불교 문화권 탐방이 목적이라고 했다.
심야버스를 탄 목적은 너무 아름답고 갸륵했다. 대학생들이 우리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밤늦은 시간에 심야 버스를 타고 경주로 향한다는 사실은 높이 살만한 일이다. 그런데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학습현장으로 가는 그들의 수준? 이 의심스러웠다. 말은 생각과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저렇게 욕설을 심하게 쏟아내는 저들의 마음과 생각에 무엇이 담겨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문화탐방이라는 것이 사치로 보였다.
욕설이란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욕설을 함으로 마음에 쌓인 울분을 드러내고, 상대방을 향한 묵은 감정을 떨쳐낼 수 있다고 한다. 욕설이 때로는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할 때도 있음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 욕설의 품격을 최대한 대우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욕설이란 때와 장소에 일치해야 품위와 품격이 갖추어지는 법이다. 예를 들어 지방 방언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욕설은 어떤 의도나 대가가 깔려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생활 속의 사용하는 일상적인 지방 방언일 뿐이다. 오히려 그런 욕설을 들어보면 재미있다. 웃음이 나온다. 이것이 우리 고전에 양념같이 등장하는 욕설들이 그 예일 수 있다.
지금 문화탐방을 가고 있는 대학생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아무리 애교로 들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심각할 정도로 언어의 부패상을 목격하고 있을 뿐이다. 정상적인 말이 몇 마디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재미있다고 깔깔대고 웃는다. 세대 차이라고만 보기에는 언어의 이질감이 너무 멀리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젊은 세대들의 언어가 이렇게 타락하고 변질된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적인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문화적인 영향을 가장 가까이에서 받은 이들이 “이 시대의 문화적인 말”을 하면서 “구시대舊時代의 문화”를 찾아가고 있다. 이 시대의 문화적인 영향이라 함은 곧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1천만 이상의 관객을 유치하는 지금 우리 한국 영화 중에 욕설이 사용되지 않는 영화가 과연 몇 편이나 될까? 정체불명의 언어들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언어가 죽어가고 있다. 표준말이냐 사투리냐? 로 과거 시대는 도농都濃과 서울과 시지방의 차별을 구별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시대의 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영화들이 거의 욕설로 시작하고 욕설로 막을 닫고 있다. 욕설을 이해하지 못하면 영화의 맥을 놓쳐 버릴 정도이다. 이런 문화권 속에서 성장한 대학생들이 욕설을 하면서 서로의 의사를 주고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수긍해야 하는 것일까?
저들이 문화탐방을 마치고 만약 보고서를 기록한다면 그 내용에 무엇을 기록할까? 보고서조차도 욕설로 기록할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준은 문화적인 수준보다 앞설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의 인간 수준은 대학생들의 욕설의 수준 밖에 되지 못하는 것일까? 음담패설이 녹아있는 말들을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히죽거리면서 주고받는 저들이 과연 우리 시대의 문화인들일까?
정녕 언어가 밝아야 시대가 밝아지는 것이다. 언어가 밝아야 삶이 밝아지는 것이다. 언어가 깨끗해야 사람이 깨끗해지는 법이다. 성경은 그렇게 말한다. <사람은 마음에 쌓은 것이 말이 되어 나온다.> 마음에 더러운 것을 담고 있으면 말도 더럽다는 말이다. 좀 더 정갈하고 깨끗하고 산뜻한 말들이 삶의 주변에서 들려지면 얼마나 밝은 세상이 될까? 그런 세상을 희망해 본다.
박 재 훈(포항강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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