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던 포스코 포항제철소 홍보팀을 떠나 포스코-신일철 직원 교환근무 프로그램에 따라 동경에 있는 신일철 본사로 출근한지 벌써 10일이 지났다.
겨우 며칠 새 일본에 대해, 신일철에 대해, 또는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수는 없지만 분명 일본열도에서는 지금 한류(韓流)열풍이 거세게불고 있다.
물론 드라마 겨울연가의 영향력이 주원인이겠지만 일본총리가 얼마전 노무현대통령과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때도 영화 ‘쉬리’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냈고 또 한국 영화배우인 최지우씨와 직접 만난 것만 봐도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은 대단한 것 같다. 일본에 머문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한국 음식이 유행하고, 배용준, 윤손하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특히 젊은 여자들 중 한국어를 배우 사람도 많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동경시내 전철역에 나가봐도 전차역(일본국철·JR 등)의 표지판은 각 역(驛)의 지명이 일본어와 영어외에 한국어로 기록돼 있기 까지 하다.
욘사마. 우리나라 배우, 배용준을 일본 여성팬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드라마 ‘겨울연가’(일본 제목: 후유노 소나타)의 인기로, 단숨에 일본 여성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욘사마’로 불리기까지 하는 배용준의 얘기로 지금 일본과 한국이 동시에 떠들썩하다.
일본을 방문한 배용준을 보기 위해 공항에 5천여 명의 여성팬들이 몰려와 밤을 새우고, 일본 각지에서 2만 명이 팬 미팅 참가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폭발적 인기 덕분에 ‘겨울연가’는 위성방송에서 올라와 현재 NHK 공중파를 통해 방영되고 있기도 하다. 자발적으로 한국말을 배우는 일본인들이 늘고 있으며, 우리나라 배용준 팬페이지에는 낯선 언어가 주는 어려움을 이기고 웹서핑으로 찾아온 일본 팬들의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한국 영화에 한국배우에 열광적인 일본인들의 시선이 곧 한국을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시선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중국과의 역사왜곡 갈등속에서도 지난 11일 고이즈미총리가 내년에도 신사참배를 계속하겠다고 밝힌 것도 철저한 국익우선의 일본인의 속내인 것이다.
포스코직원으로서 이곳에와서는 신일철 본사의 각 부서별로 돌아가며 나에게 저녁을 사는 회식이 이어지고 있다. 정말 친절하고 남을 배려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특히 7번이상의 회식중에 단 한번도 그 메뉴가 중복된 경우가 없었다.
신일철 직원이 포스코에서 근무할 때 우리는 가끔씩의 회식때마다 회나 불고기를 먹으러 갔지만 신일철에서는 손님의 입장에서 단 한번의 메뉴도 겹치지 않게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더 깊이 생각하면 그 ‘배려’가 오히려 기분이 상할 수 도 있는 내용이었다.
그 만큼 경쟁업체이기도한 포스코직원의 식단까지도 누군가가 종합적으로 감시(?)통제하고 면밀히 체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곳에 와서는 포항에서는 아무 불편없이 사용하던 인터넷이며 심지어 메일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생활을 완전 빼앗겨 버렸다.
한글 입력도 어려울 뿐더러 메일 작성중에 인터넷이 끊겨서 중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의도적이지는 않다고 믿고싶지만 신일철 직원들은 사내 네트워크인 인터라넷을 통해 자유롭고 빠르게 정보를 검색하고 언제나 손쉽게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지만 한국 포스코에서온 ‘경계해야 할‘ 연수생에게는 전화모뎀으로만 연결되는 답답한 사외라인을 깔아주니 속도가 너무 늦고 끊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림파일은 아예 조회가 불가능하고 메일로 회사에 연락하고 싶어도 어렵다. 한국과 함께 전자부문, IT 부문이 세계 초일류 국가이고 더욱이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인 신일철 본사 심장부에서 이처럼 답답함을 느껴야 하니 아이러니컬 할 뿐이다.
분명히 일본은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한국을 더 경계하고 더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다. 일본인이 바라보는 한국에 대한 인상은 지나치게 예의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는 냉정함이 있다.
그래서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인 모양이다. (동경에서)
변 재 오(포항제철소 홍보팀총괄직)
*변재오과장은 포스코와 신일본제철간의 직원 교환근무 프로그램에 따라 지난 2일부터 오는 10월초까지 약 70일간 일본 동경에 위치한 신일철 본사에서 순환근무를 통해 두 회사간 업무시스템을 비교 검토하고 업무능력을 배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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