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라 자부하고 살았다. 태종실록에 예의 염치가 ‘나라의 기틀’이라고 하였고, 우암 등 많은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윤리도덕의 근본이라 강조하였다 한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염치가 없는지 초대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꾀하다 학생들 데모로 쫓겨난 것도, 그로 인하여 혼란에 빠진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선 대통령이 극빈국에서 중진국의 대열에 이르기까지 올라서게 하기는 하였으나 또 다시 영구 집권을 위하여 무리수를 두다가 부하의 총탄에 비명에 갔다.
그들에게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예의 염치만 있었더라면 그런 불행한 일은 생기지 않았을 터인데….
염치없어 보이기는 그 후임자들 역시 오십보 백보이다. 대통령도 그러니 그 외 지도자들은 두 말 할 나위 없다. 그런데 지도자들의 염치없기는 그 뿌리가 아주 깊어보이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 정승 판서가 되고 양반의 반열에 오르던 선비들은 벼슬을 하여 좋은 정치 펴는 것을 일생의 업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 그들은 제조업, 수산업, 상업은 물론 농사일까지 아래 사람들에게 맡기고 오직 과거에 급제하기 위하여 유교 경전의 공부와 수련에 매달렸다.
그들이 펼치려는 ‘좋은 정치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멀리있는 사람들에게 유혹을 받게 하는 것이라’고 공자는 말씀하셨다. 그것은 백성들을 등따시고 배부르게 하고, 인권과 자유,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백성들을 등따시고 배부르게 하기는커녕 자기들 자리 보전에 급급하다가 부국강병을 잘하지 못하여 임란과 호란과 같은 전란을 몇차례나 겪게 하였다.
조선 말 200여년간 정권을 잡았던 노론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주자를 ‘금과옥조’로 숭배하여 사상이 경직되어 노자학, 양명학까지 이단으로 취급할 정도였다. 일본, 서양 등 외래 사상의 유입은 당연히 불가능하였고 결국 조선은 망하였다.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군주를 배신하고 국가와 백성을 배신한 대역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것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망국에 대한 책임을 시원하게 규명한 글을 보지 못한 것이다. 배움이 얕은 탓이겠지만 널리 공론화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망국 책임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첫째, 지금까지 일제 강점 문제만 나오면 일본 탓만하고 이완용, 송병준 등 매국노들을 질타하는 소리만 들리지 지도자들에 대한 반성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또 책임 규명이 있었더라면 가족중에 정도나 상해같은 죄를 지은 사람만 있어도 부끄러워 남몰래 이사하는데 어떻게 살인죄보다 더 무거운 망국에 책임이 있는 정승 판서들 가문의 후손들이 부끄러워하는 기색없이 무슨 존경받을 조상을 둔 양반 중의 양반인 양 거들먹거리며 살 수 있는가하는 의문 때문이다.
과거사를 규명하여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려는 사람들조차 망국 책임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왜 그런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남북분단, 6·25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적 모순들 거의 대부분이 일제강점 때문이라는데 그것은 바로 망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친일파’란 문제도 망국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 따라서 이왕 과거사를 정리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망국의 책임부터 규명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조 유 현(녹색소비자연대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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