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목욕탕에 갔을 때, 중3 남학생 6명이 목욕을 하러 들어왔다. 그들은 친구사이였고, 장난을 지나치게 하는 사이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냉탕 속에서 장난을 치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그냥 물장난이겠거니 하고, 그들만의 시절의 놀이가 부러워보였고, 지나간 시절의 내 모습도 잠시 떠올려 보았다. 그들 중에 유독 키가 작고 야윈 아이 두 명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덩치가 큰 아이들의 힘에 눌러 물 속에서 나오지를 못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친구들은 그것을 보면서 재미있다고 손뼉을 치고 함성을 지르고 난리였다. 아무도 만류하거나 도와주려고 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재미있다고 구경하고 있던 내 자신이 은근히 화가 났다. <이것은 장난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약자를 가지고 장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하라고 제재를 했다.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또 다른 곳으로 몰려가서 작은 아이들을 상대로 그런 심각한 물장난을 계속했다. 작은 두 아이를 번갈아 가면서 물 속에 끌고 들어와 거의 실신할 정도로 물 속에 집어넣는 장난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덩치가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을 물수건으로 때리기도 하고,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발로 차기도 하고, 번쩍 안아서 그냥 물 속에 내려치기도 하고…. 도저히 친구 사이에 장난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위험하고 살벌했다.
아이들의 장난의 수준이 생명을 담보로 하는 듯함에 엄청 놀랐다. 타인의 육체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제대로 모르거나 아니면 무시해 버리는 듯한 인상을 심각하게 받았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에 대해서 전혀 잘못되었다는 의식이 없어 보였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학교에서 목을 졸라 실신케 했다가 깨어나는 장난을 치다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있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른 사람의 목을 졸라 실신하는 그 광경을 보기 위해서 아이들이 모여 그 중에서 약한 아이를 지명하고, 그 아이의 목을 졸라 실신해 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웃고 떠들 아이들을 상상해보면 아찔하고 끔찍한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다. 며칠 전에는 공중파 방송에서 유명한 성우가 출연하여 떡 먹기 게임을 하다가 그 떡이 기도를 막는 바람에 결국 의식불명이 되어 버렸다는 소식도 접했다. 매스컴이 보여주는 장난도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현실 속에서 아이들의 놀이 문화가 없다는 것이 저들이 생명을 담보로 하는 자극적이고 자학적인 장난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아이들에게는 놀이 공간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제도권 교육 여건 하에는 아이들은 교실과 학원 강의실뿐이다. 그 곳은 놀이공간은 될 수 없다. 운동장의 면적은 줄어들고, 좁아지고, 놀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압수된 상태다. 놀 줄 모르는 아이들, 장난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자성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으로 가다보면 언젠가는 정말로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하는 그런 날이 도래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건전한 놀이 문화, 재미있는 장난문화가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과연 내일에 대한 희망을 걸 수 있을까? 교실과 강의실 안에서만 자라면서 약한 친구들의 육체를 함부로 다루는 아이들에게 과연 내일의 꿈을 실현할 의지는 있는 것일까?
정녕 아이들을 생각하는 어른들이라면 이제는 아이들에게 놀고 장난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돌려주어야 한다. 여기에는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놀이와 장난을 모르고 성장한 아이들이 과연 건강한 사회, 건전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건강한 사회, 건강한 인간은 교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땀을 흘리며 우정을 소중히 여기며, 놀이와 장난을 통해서 또 다른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놀 수 있는 시간을 돌려주자. 아이들에게 진정 함박웃음이 묻어나오는 장난의 여유를 누리게 해 주자. 그것만이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의 아이들로 성장시켜갈 수 있다. 잘 노는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한다. 논다는 것과 공부한다는 것은 성장하는 아이들에게는 더 없이 중요한 성장의 과정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너무 한 쪽으로 편향된 아이들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놀 줄 모르는 아이들로....다른 사람의 육체와 생명의 소중성을 모르는 아이들로….
박 재 훈(포항강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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