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다녀왔다. 공식 모임도 있었지만 사실 공식 모임보다는 포항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포항으로 오가는 길목의 만추를 보고 싶어서 더 서둘렀다.
특히 불현듯 밤 기차를 타고 싶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공식 모임 날짜보다 하루 일찍 서울로 올랐다. 밤이라 바깥 풍경을 보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마음은 넉넉했고 여유로웠다. 그리고 내려오는 시간은 오전 시간을 택해서 가장 화려한 시간의 만추를 보았다.
서울에 머무는 시간동안 잠시 청량리 역 광장에 나가 보았다. 가을 마지막 단풍구경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쉼 없이 흐르는 물과 같이 오갔다. 그런 와중에 주차장 뒤편에서 30대 초반의 부부가 심하게 다투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다툼은 부부라는 개념을 뛰어넘은 듯해 보였다. 남자가 소리치고, 여자는 크게 소리 내어 울고, 그 우는 것이 애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그 곁에는 6살 정도 된 딸아이가 울면서 “아빠! 싸우지 마. 엄마! 싸우지 마” 하면서 이쪽저쪽을 오가면서 엄마 아빠의 싸움을 말리느라 바쁘게 보였다. 나는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마음이 저려왔다. 부모의 싸움을 만류하느라 애쓰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는 가방을 들고 가고, 여자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딸아이는 처음에는 아빠 따라 가려고 하다가 엄마 쪽으로 한 번 힐끗 쳐다보고서는 엄마에게로 돌아서 왔다. 가던 아빠가 소리를 쳤다. “뭐해? 빨리 오지 않고.” 그 아이는 엄마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종종걸음 아빠를 따라 사라져 버렸다.
‘싸움’이라는 것은 어떤 명목으로도 슬픈 일이다. 아픈 일이다. 흔히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한다. ‘전쟁’도 ‘싸움’이다. 전쟁이든 싸움이든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싸움이라는 것은 그 결과가 어떻든 가해자도 피해자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결론을 가져 다 주는 묘한 사람들의 행위이다. 그럼에도 싸움만을 하려는 이웃들이 있다는 것이 때로는 왜 꼭 저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반문해 보게 된다.
지금 어른 된 사람들은 자라는 다음 세대인 우리의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매스컴의 주된 주제가 ‘싸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지금 사생결판을 하고 있다.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들 따라 제각각 갈 길을 가고 있다. 서로를 비난하면서…. 어떻게 보면 유치할 정도로 싸우려고 한다. 솔직히 “나라에 높으신 어른들! 제발 싸우지 마세요.” 라고 당부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이 볼까 민망스럽기 때문이다.
어느 글에선가 읽었던 뉴욕 타임스 칼럼리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가 쓴 글을 중에 이런 내용이 기억에 떠오른다. “ 한 방에 둘이 같이 있을 때 각국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상정한 우스갯소리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미국인은 상대방을 맞고소하고, 중국인은 장사를 트기 위해 흥정을 벌이고, 일본인은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고, 싱가포르인은 학교 성적표를 보자고 할 것이며, 대만인은 함께 해외 이민 신청을 하고, 인도인은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미국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스페인인은 섹스에 열중한답니다. 그러면 한국인 두 명은? ” 니콜라스 크리스토프가 던진 질문이다. 그가 내놓은 한국인에 관한 정답은 다음과 같다. “아마도 싸우려 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어느 나라 사람에 대해서 선입견을 갖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서방에 비친 한국과 한국인의 이미지가 이와 같다면 무심코 지나갈 문제는 아닙니다.”
이 사람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외국인의 눈에 비치는 작금의 정치인들의 언행과, 혹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싸우려고 덤비는 국민과 국민 사이의 갈등의 폭은 어쩜 이런 지적에 합당한 근거를 제공해 주는 것 같아 부끄러워진다.
좀 더 성숙한 삶의 모습이 요구되는 시대라 여겨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각이 일치될 수는 없다.
다양함을 인정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열겠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싸움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우스운 모습이다.
어떤 명분으로든 싸우지 말아야 한다. 아빠 엄마를 향해 “싸우지마”하던 그 어린 소녀는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박 재 훈(포항강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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