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이 한동안 주목을 받았다. 종교간의 충돌이 더욱 격렬해지리라 전망한 것이다. 그를 반박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지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종교간의 갈등 양상을 보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세르비아 사태는 많은 사상자를 내고 이제 잠잠해진 듯하지만, 중동사태는 아직도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하려고 투쟁한 것이나 체첸인들이 러시아에서 독립하려고 투쟁하는 바탕에는 종교문제가 깔려있고, 필리핀, 중국은 물론 태국에서도 근래에 종교간의 갈등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다.
사전에 보면 지금까지 일어날 전쟁의 거의 대부분이 종교전쟁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종교란 “통상의 방법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인간의 불안, 죽음, 심각한 고민 등을 해결하려고 만들어진”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더 많은 분쟁의 불씨가 되어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고 있으니 참으로 역설적이다.
죽음 등의 문제를 초월적인 힘에 의하여 해결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들이 서로 자기들 종교만이 진리이고, 지상낙원을 이루는 최선이 길이라고 주장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의견 충돌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야망을 가진 지도자들이 말리기보다는 야욕을 채우기 위하여 부추겨서 그러해질 것이다.
종교는 선거 출마자들이 가장 이용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선진국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닌 듯,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종교적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한다.
여러 언론에서 그것을 거론하며 부각시키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타락한 기독교에 실망한 유럽 사람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억 만리를 건너와 세운 나라가 아닌가. 종교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아무튼 정치 지도자들은 자기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종교를 이용하려 하고, 종교인들은 그 사람을 통하여 그들의 이념이 널리 퍼져 실현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기들 종교의 신자가 당선되기를 바란다. 인지상정이라 할 것이다. 그렇게 당선된 지도자가 편애하는 일이 없다 하여도 그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그래서 아주 사소한 일에도 분노하게 되어 자칫 종교분쟁으로까지 번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 나라보다 종교가 다양하여 종교 분쟁이 일어나기 쉬운 나라라 한다. 그래도 큰 말썽 없이 평온을 유지하게 된 것은 문명의 충돌(6.25 전쟁)을 경험한 바 있는 우리로서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가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종교의 근본 정신은 사랑이다. 그 사랑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이 바탕이 될 것이다.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데, 어찌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 지역에서 종교간에 갈등이 빚어질 조짐이 보여 불안스럽다.
종교의 자유는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에게도 예외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대통령에게는 예외가 있으니, 그가 믿는 종교의 선행단체의 간부가 되는 일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배려에서이다.
그것은 지방정부의 대표자에게도 요구되는 덕행일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를 중앙정부에 대비하여 지방정부라 하지만, 지역민들에게는 중앙정부 못지 않게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낸다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갈등이 하루빨리 조용히 해결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조 유 현(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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