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하고, 불우 이웃돕기 캠페인의 목소리가 더욱 더 커져가는 한 해의 중순, 성탄의 계절이 다가왔다.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과거처럼 사람들의 표정이나 마음에는 여유로움이나 넉넉함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처한 이웃들을 돌아보려는 사람들의 모습과 마음가짐이 한없이 곱게만 보인다. 어렵고 힘들 때 조금씩 나누어주고 받는다면 그것 또한 사람 사는 세상에 따뜻한 하나의 난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은 자신의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 설 때만이 가능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나누려는 이웃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는 따뜻할 수밖에 없다.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세상 어느 구석엔가 또 다른 사랑의 난로가 따뜻하게 피어오르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뿌듯할 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판단하거나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자는 의미의 말이다. 성탄(聖誕)이 다가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은 사람 된 우리들을 위해서 오셨다. 인류에게 평화와 더불어 사랑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시다. 우리를 이해해 주시고, 배려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것들을 몸소 가르쳐 주셨고, 실천해 보여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역지사지의 표상이시다. 그 분은 우리와 똑같이 되려고 오신 분이시다. 우리와 똑같은 희로애락의 존재로 살기 위해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똑같이 된다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에는 반드시 필요한 삶의 자세이다. 사람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실천하는 것이다. 성탄의 계절은 그래서 언제나 우리들에게 설렘과 더불어 기쁨을 주는 것이다.
칼릴 지브란이 쓴 ‘광인(狂人)’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와이러니라는 머나 먼 성에 권세 있고 지혜로운 임금이 있었다. 백성들은 그의 권세를 두려워했으나 그의 지혜는 사랑했다. 성 한 가운데에는 시원하고 맑은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주민들은 모두 그 물을 마셨다. 임금과 신하들도 그 물을 마셨다. 다른 곳엔 우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모두가 잠든 틈을 타고 마녀가 성에 들어와 우물에다 이상한 물약을 일곱 방울 떨어뜨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모두 미쳐 버릴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임금과 시종장을 뺀 나머지 주민 모두가 그 우물물을 마시고는 마녀가 말한 대로 미쳐 버렸다. 그 날은 골목길에도 시장 통에서도 사람들이 모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귀엣말만 주고받았다. ‘임금님이 미쳤답니다. 임금님이랑 시종장님이 정신이 나갔다는군요. 우리가 미친 사람을 임금님으로 모실 순 없잖습니까? 쫓아내야 합니다.’ 그 날 저녁 임금은 금 술잔에다 그 우물물을 떠오라는 분부를 내렸다. 물을 떠오자 임금은 단숨에 쭉 들이키고는 시종장에게도 마시라고 주었다. 그리고 와이러니라는 그 머나먼 성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임금과 시종장이 제정신을 되찾은 것이다.
세상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지혜만 있다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웃이 없다는 것은 사막에 버려진 존재이다. 사막에 버려진 사람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죽을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외로움의 병은 가장 무서운 병이다.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조차도 독방만은 피하고 싶어하는 이유도 바로 외로움 때문이다. 외로움에 빠지면 육체도 정신도 망가진다. 황폐하게 된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이웃들이 너무 많다. 비단 사회복지 시설에 머무는 이웃들이 아니어도 경제적인 파탄으로 인해 찾아든 가정의 불화 때문에 외로움에 버려진 이웃들이 너무 많다. 저들에게로 내려가야 한다. 나 혼자만의 배부름으로 자화자찬하기에는 너무 사치스런 계절이다. 모두가 미쳤는데 혼자만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함께 미쳐야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조금만 더 내려가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네가 내게로 오라”가 아니라 “내가 너에게로 가리라”하는 삶의 실천이 필요하다. 성탄의 계절이다. 약하고 가난한 이웃들을 찾아 내려가는 성탄의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 재 훈(포항강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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