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중반을 지나고 있다. 지금쯤이면 과거지향적인 사람들은 ‘나’자신을 후회와 한 숨으로 시간을 보낼 것이고,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은 지금 쯤 ‘나’자신을 새해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골몰해야 할 시점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있는 또 다른 자신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다. 사실 숨겨진 ‘나’자신은 굉장한 용기와 의지를 가지고 있다. 즉 ‘무엇을 해 보고 싶다’ 또는 ‘그렇게 한 번 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들이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나’자신에 의해서 약해져 버릴 때가 많다.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네가 기술이 있냐? 돈이 있냐? 배운게 있냐? 그만해’ 라는 또 다른 ‘나’자신의 말에 그만 굴복하고 만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적敵은 바로 자기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자기 발전을 위해서 스스로 적敵을 만들 필요가 있다. 즉 나를 대적하는 또 다른 ‘나’를 만들 필요가 있다. 나를 대적하고 공격하고 괴롭히는 또 다른 ‘나’가 있어야 긴장감을 가지는 인생을 살 수 있고,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헤쳐 나가려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 문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앙테크리스타’라는 소설은 자신의 적敵을 통하여 주인공 16세 소녀 블랑슈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려 놓고 있다. 책 읽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약한 주인공 불랑슈가 자신감과 활동성에 충만한 친구 크리스타를 만나면서 겪는 갈등과 고통과 아픔을 통해 자아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다. 그녀의 친구 크리스타는 전형적인 이중성의 소녀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인정과 사랑을 받으면서도 유독 친구인 주인공 불랑슈 에게만 살살 맞고 못된 친구다. 그래서 그녀는 ‘크리스타’ 라는 이름에서 ‘앙테(적敵) 크리스타’ 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책 밖에 모르던 주인공 불랑슈가 그렇게 얄밉고 못된 친구, 그의 적敵인 앙테크리스타를 통해서 세상을 보게 되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불랑슈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내가 가진 보잘 것 없는 것을 내게서 빼앗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나봐. 내가 송두리째 썩어 문드러져야 하나봐! 내 약점을 알고서 일부러 그것을 이용하고 있잖아.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 즐기고 있어. 나를 희생양으로 선택한 거야. 나는 저에게 좋은 것만 주는데, 저 애는 나한테 나쁜 것만 주고 있어. 끝이 좋지 못할 거야. 앙테크리스타, 내 말들 듣고 있지. 넌 악이야. 용을 물리치듯 난 널 물리치고 말 거야!” 저자 아멜리 노통브는 이러한 적을 “매혹의 적”이라고 부른다.
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적敵으로 인하여 아파하고 고통을 당한다. 그래서 그 적을 미워하고, 불평하면서 적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호전되고 안전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개인의 발전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안과 밖에 존재하는 적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적을 이기기 위해서, 적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하고, 연구하고, 인내하고, 몸부림쳐왔기 때문에 개인의 역사에 발전성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안과 밖의 적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전과 용기와 목표라는 것이 없다. 오히려 힘들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무엇인가를 향하여 도전할 의욕이 있을 때 비로소 개인은 성장의 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지나는 12월을 보면서 낙담하거나 한 숨을 쉬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적인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내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내일 바라봄에 있어서 현재 자신의 주변에 머물러 있는 삶의 방해물(적敵)을 제거하기 위해 의지와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그것이 자신을 자신되게 하는 길이다. 삶의 방해물 앞에 굴복하는 나약한 모습으로는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수 없다.
현재의 힘듦과 어려움은 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적(敵)이라 생각하고 그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힘쓰고 애쓴다면 자신의 자신됨을 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현재의 어려움과 장애물을 두려워만 하지 말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헤쳐 나가자. “넌 악이여. 용을 물리치듯 난 널 물리치고 말 거야!”라는 오기서린 몸부림이 있을 때 비로소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일어설 수 있게 된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을 적으로 간주하자. 그 적을 물리치기 위해 긴장감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자. 한 해의 끝자락이 서산에 걸려있는 이 때, 새해를 소망하는 용기를 가지자. 정녕 소망을 가진 사람만이 소망을 이룰 수 있음을 확신하면서….
박 재 훈(포항강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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