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92세 노인이 자식들에게 더는 짐이 되기 싫다며 78년을 해로한 치매 걸린 아내를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하루 평균 10명의 노인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고 전체 자살자의 25%가 노인이다. 지난해는 65세 이상 노인 3600명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소득이 없는 무병장수는 이제 더 이상 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는 셈이다.
지난 40여년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25년이 늘어나 곧 80세에 이른다. 하지만 직장에 다닐 수 있는 나이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고, 현재 55세 이상 인구의 60%가 무직상태다. 일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자식들의 봉양도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연명해야 하는 삶의 조건이 노인들을 자살로 몰아가고 있다. 노인들의 현실이 이러한데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대한 우리들의 대응은 느리기만 하다.
노후 소득보장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국민연금의 경우는 어떤가. 집단적, 세대적인 차원을 넘어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국민연금은 “내는 것에 비해 너무 많이 받도록” 설계되어 있고, 급속한 노령화의 진전으로 장기적인 재정안정 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의 장기적인 재정안정을 위하여 법 개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현행 보험료율 9%와 소득대체율 60%를 유지할 경우 2036년 당년도 수지적자로 전환되어 2047년에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현행제도를 유지할 경우 2050년에는 소득의 30%, 2070년에는 39.1%를 보험료로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자녀세대의 연금부담이 지나치게 과중하게 되어 세대간 사회적 갈등을 일으켜 결국 연금제도의 존립기반을 위협할 것이다.
제도가 성숙되어 연금수급자가 많아지게 되면 연금제도 개혁이 매우 어려워 진다는 사실은 선진국의 경험을 보아서 알 수 있고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더구나 제도 시행 20년이 되는 해를 맞아 본격적인 연금수급자가 발생하는 2008년 연금수급자는 27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어 법개정이 늦어질수록 제도개선은 더 어려워짐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국민연금법안은 “더 내고 덜 받는 연금”이라는 따가운 시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소극적인 자세로 이번 회기 내 국회 통과가 무산될 경우 멀지 않은 장래에 “기금 고갈”이라는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반드시 국민연금법을 개정하여 장기 재정의 건전화를 달성하고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여야 하며,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제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결국 이번에 보험료율과 급여율을 조정하지 않는다면 현재 정부가 마련한 재정안정화 방안과 동일한 재정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추가적인 소득대체율의 하락과 보험료율의 인상이 필요하며 이로 인해 가입자들은 더욱 연금제도를 불신하게 될 것이다.
또한 가입자의 인식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과거 연금도입기의 저부담-고급여의 기득권을 계속 주장할 것이 아니라 “우리세대가 조금 덜 받고 우리 자녀세대가 크게 덜 내는” 방향으로 부담·급여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우리세대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임을 인식하여야만 한다.
그리하여 연금재정의 장기적인 안정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연금이 노후 대비를 위한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그 토대를 굳건히 해야 한다. 정 태 욱(국민연금관리공단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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