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초하루 새벽 호미곶에서 수면위로 솟구치는 일출을 바라보며 새롭게 펼쳐질 꿈과 희망의 새해를 설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 다시 또 한해가 저물어 가는 12월에 당도하여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우리는 지나가 버린 한해에 대한 회한과 다가올 새날을 향한 기대감이 교차되는 마음으로 남은 마무리를 위해 혼신을 다하는 아쉬운 모습들을 보아왔다.
그러나 지금 맞고있는 2004년 세모처럼 새날에 대한 설렘은커녕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짙게 드리워진 어둠의 장막을 헤쳐 나오지 못하고 절망하며 참담해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지난 11월17일 수능시험을 치른 후 우리는 도무지 믿을 수도 믿기지도 않는 한 사건을 접해야 했다. 바로 수능시험 부정이 그것이다. 밝혀진 가담자만도 수 백명을 넘고 있고 이제는 남의 시험지를 훔쳐보는 차원을 넘어 학생들은 신성한 학교에서 부정을 기획하고 가담할 학생을 모집했으며 또 자금을 모으고 고시원 방에서 예행 연습까지 했다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양심과 진실, 법과 도덕을 가르치지 않고 성적제일 주의를 부추긴 업보 치곤 너무도 가혹하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해야 하는 일들은 이것이 다는 아니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정 단상에서 헌법 재판소의 행정수도 위헌 결정을 두고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모독한 12·12 군사반란에 버금가는 사법 쿠데타로 단정하고 있으며 나아가 국가 보안법 폐지 반대입장을 표명한 대한민국 사법부 최고 기관인 대법원을 향해 보안법 폐지론자들은 한평생 기득권에 취해 살아 온 사람들로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수구세력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1천738개 사립학교 재단은 관련법안이 통과되면 학교를 폐쇄하겠다고 의결하고 있으며 대통령 직속 한 단체는 사회 안전법 폐지를 주장해 온 비전향 남파 간첩을 민주투사라며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세대와 지역, 계층간의 갈등도 모자라 이제는 이념의 갈등까지 더욱 심화되어만 가고 있다.
마치 가치관의 혼돈이 극점에 도달한 느낌이다.
경제 분야로 눈을 돌리면 우리를 더 암담하게 한다.
지난주 한 공영방송이 창사 43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우리국민의 62%는 살림살이가 상당히 어렵다고 답했고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64%가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이처럼 어려운 경기가 1년 내에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 14%에도 미치지 못한 반면 절반이상이 3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우리 경제나 기업의 경쟁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4대 입법을 갖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한 어느 경제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국가의 지도자들은 민심의 선후를 너무 모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학교급식비를 못내는 가구가 전년도보다 18%나 증가하였고 늘어나는 것은 문닫는 음식점과 실업자, 이혼건수, 노숙자 들이요 돈을 내지 못해 전기와 수도와 가스가 끊긴 집은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지경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바닥 경제는 미동도 하지 않고 오늘도 빛이 보이지 않은 터널 속에서 수많은 서민층이 빈곤층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다. 2004년 세모의 자화상 치곤 너무도 우울한 우리의 현실이다.
비록 이처럼 국가적으로는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 포항시만큼은 지난 한해동안 최선을 다하여 온 것처럼 모두가 합심하여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를 발휘해 나아갔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그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 민의를 대변해 왔던 포항시의회도 다시 한해를 마무리하며 혼신을 다해 한층 심기일전하여 어려움과 아픔까지도 함께 하는 마음으로 시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새해엔 진정으로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의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박 문 하 (시의원·시인)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