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지가 발간되어 널리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관에 배포하려 갔다가(팔러간 것이 아님)홀대를 받고 온 사람으로부터 화가나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않겠노라며 다짐하는 것을 들었다.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문학 동인들 중 이 말을 들으면 섭섭해 하실 분도 있겠지만, 동네 축구, 농구 동호인들에게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동네 생활체육 동호인들이 운동이 좋아 틈틈이 즐기듯이 문학 동인들도 그러하고, 그들의 열기가 학교 체육을 활성화시켰고, 국가대표선수를 길러내었으며, 프로 팀의 탄생에 밑거름이 되었듯이 문학 동인들도 그런 역할을 한다. 체육에도 관중을 필요한 것처럼 문학에도 읽어줄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한용운이나 서정주, 노벨문학상을 탄 세계적인 작가도 읽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가능하였다.
사람에게 고른 영양분이 필요하듯이 문화도 골고루 발전되어야 한다. 체육도 즐기고, 노래방에도 가야 하고 대중예술도 있어야 하지만, 문학과 순수문화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야 선진사회가 된다. 시민의식은 건강하게 되며, 인간의 본성으로 모순이 많아 개조의 대상이 된다는 자본주의도 순화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체육에 비하면 덜하고, 문학에는 더더욱 그렇다. 정부가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위하여 투자한 예산을 생각해보라. 연극이나 무용, 관현악은 혼자 하기 어려운 공연 예술이므로 국가 또는 시에서 시립연극단, 시립무용단 등을 만들고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다른 부문에 대한 지원이 너무 인색하기 때문에 동인들은 때때로 불만을 토로한다. 동인지 발간을 위한 지원 금액이 한 해에 고작 70만원이라니…. 그래도 그들은 문학을 사랑하고 지역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열정에서 활동들을 계속한다.
그들의 소망은 물론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지만, 그보다 우선 발간한 동인지를 읽어 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인지를 만들면 기관장들과 특히 시민의 대변자인 시의원들에게 자랑하고 싶어하고, 지역문화를 이어갈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싶어한다. 택배로 배부하지만, 수량이 많은 곳에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회장 총무가 몸소 들고 간다. 그랬는데 반겨주기는커녕 책을 팔려온 잡상인 취급을 받았으니 속상할 수밖에.
속속들이 사정을 알리 없는 공무원들이기에 잡상인으로 오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들이란 누구인가?
그들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하여 일하는 조건으로 백성들이 땀 흘려 번 돈으로 낸 세금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임무는 백성들에 대한 봉사이다. 잡상인들이라고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도 정부에게 행복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국민이고, 정부는 그 책임이 있다.
봉사보다 군림하려는 자세에서 비롯되었을 것 같다. 그런 공무원들을 볼 때마다 조선시대 아전과 관리들 생각이 난다면 실례일까? 아전이나 관직에 오른 선비들이 봉사보다는 착취에 열을 더 올린 결과 나라가 피폐해져 결국 일본의 속국이 되었다. 그 뼈 아픈 역사를 겪은 우리는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는 벌써 청산되어서야 마땅한 것인데,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느껴진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공무원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면 그런 일을 다한 후에 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지역문화를 꽃 피울 책임은 공무원들에게 있다. 지역의 문학 예술 동인들을 후원하고, 신바람을 내도록 격려해야 한다. 국가를 세운 목적이 행복을 누리며 살기 위한 것이며,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애써야 할 사람들이 공무원들이기에 담당을 가리지 않는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와 세계적인 예술가가 이 고장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문학 예술인들이 동경하고 모여든다고 생각해보라. 살만한 곳이 되지 않겠는가? 조 유 현(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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