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때맞춰 내리는 비는 하늘의 은총이다. 가뭄끝에 내리는 비나, 물이 한꺼번에 많이 필요한 봄철 모내기때 내리는 비는 실로 달디단 감주 같아서 사람들은 이 비에 최상의 ‘존칭’을 붙여주었다. 단 비라 해서 甘雨, 신령의 조화라 해서 靈雨, 어머니의 사랑 같다 해서 慈雨, 하늘의 은혜라 해서 惠雨 등등 이름도 많다.
왕조시대에는 가뭄에 제일 속타는 사람도 왕이고, 비가 내려 가장 신나는 이도 임금님이었다. 조선조 太宗 이방원은 기우제를 지내고 비가 내리자 얼마나 좋았던지, 임금 체통 같은 것 내버리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즉흥시 한수를 지어 불렀다.
“임금이 친히 나아가 옥잔에 술을 드리니/ 홀연히 흡족한 비 내려 宮人들의 옷을 적시네/ 반은 연하고 반은 진한 紅衣가 더 고와/ 교태 띤 西施가 무어라 한마디 하는 듯”
西施(서시)란, 잘 알다 시피, 춘추시대 吳나라 왕 ‘구천’의 정신을 쑥 뽑아놓은 傾國之色(경국지색). 태종도 이 甘雨가 ‘서시 만난 구천’처럼 반가웠다는 뜻이겠다.
조선시대에는 극심한 가뭄이 들 때는 ‘전국적 규모의 기우제’를 올렸다. 임금이 王位를 걸고 거행하는 기우제였다.
가뭄이 막바지에 다달았던 지난 18일, 성균관은 土神과 穀神을 모신 사직단에서 전국적 규모의 기우제를 올렸다. 각처에서 儒林 500여명이 참여했고,‘국조오례의’와 인간문화재들에게 고증을 받아 ‘조선조시대 전국적 기우제’의 절차를 그대로 본받았다.
그런데 기우제를 지낸 바로 다음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상청은 일주일 후에나 비가 올 것이라고 예보했었던 것이다. 성균관측은 다음날부터 전국에서 걸려온 ‘감사전화’를 받느라고 바빴다고 한다.
‘뜻밖의 甘雨’를 가지고 아첨의 재료로 삼은 공무원도 있었다. 행정자치부 지방재정세무국장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의 가뭄극복 담화에 하늘도 감동해 비를 내려주신 것같다”고 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다.
대통령이 ‘사직단의 기우제’에는 물론 가지 않았지만 ‘담화문’을 祭文 삼아 主祭官의 역할을 했노라하면 이해될 법도 하다. 그러나 공무원의 아첨근성은 분명 ‘신문 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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