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믿는 학설을 굽혀 세속에 아부하거나 진리에 어긋하는 학문으로 권세에 아첨하는 것을 ‘曲學阿世(곡학아세)’라 한다. 한나라 景帝는 권좌에 오르자 천하에 인재를 찾던중 90살이나 되는 원고생(轅固生)을 발탁했다.
“폐하, 그 늙어빠진 촌뜨기 선비를 어디에 쓰겠습니까, 집에서 증손자나 보는 것이 제격일겁니다” 경제측근의 어용학자들이 원고생을 씹었다. 그와 함께 등용된 젊은 선비 공손흥마져 그가 못마땅했다. 그러나 원고생은 그에 개의치 않고 젊은 선비에게 당부했다. “지금 학문의 道는 사라지고 邪說(사설)이 판을 치고 있네. 아무쪼록 바른 학문을 열심히 닦아 자기가 믿는 학설을 굽혀 세상속물들에게 아부하지 말게”
우리 정치사의 곡학아세 표본은 군사정권시대 정권 유지와 연장을 도와주면서 자신의 이익추구에 급급했던 어용학자들이다. 이들은 아부의 대가로 국회의원이 돼 정계진출, 영화를 누리기도 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 무신정권에 곡학아세하는 어용학자들이 판을 쳤다. 그 대표적 인물이 이규보(李奎報). 그는 한때 임춘 등과 함께 비판적인 학자였으나 최충헌이 정권을 잡자 최씨정권을 찬양하는 어용학자로 변신, 글재주를 이용해 재상의 자리까지 올랐다.
최충헌의 집에 초대돼간 이규보는 최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축수시를 지어올려 환심을 사 출세가도를 질주했다. 경주지방에서 무신정권에 반대하는 농민항쟁이 일어나자 토벌군에 끼어 종군한 이규보는 농민항쟁을 신라부흥운동으로 몰아 공공연히 지역감정을 유발시켰다. 그리고 토벌격문을 작성, 농민항쟁진압에 광분했다.
이 기간의 행적때문에 그는 빛나는 문학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권세에 아부해 부귀영화를 누린 어용지식인’으로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최근 한 여성여당의원이 언론세무조사와 관련해서 신문에 글을 기고한 작가 이문렬을 ‘곡학아세한다’ 비난, 세인들의 논란거리가 되었다. 권력의 눈밖에 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밝힌 것이 어째서 ‘곡학아세’인가. ‘곡학아세’란 말을 그 여성국회의원은 뒤집어 해석한 모양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