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동운동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사진 한장이 있다. 예서체로 써여진 ‘乙密臺’ 현판이 보이고, 그 위로 낡은 골기와지붕이 보인다. 그리고 그 지붕위에 한 여인이 오두커니 앉아 있는데,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젊은 여성이다. 1931년 5월 29일 어떤 일본인이 찍은 사진이다.
높이 12m나 되는 을밀대 지붕위에 올라가 시위를 하는 이 여성은 평양 ‘평원고무공장’ 직공 ‘강주룡’. 그녀는 ‘독립단’에서 활동하다가 남편이 죽자 집에 돌아와 부모와 동생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고무공장에 취직했다.
1929년은 전 세계가 불황에 빠져 있을 때였다. 고무공장주들도 임금을 깎고, 해고와 함께 노동시간을 연장하겠다 했다. 강주룡이 ‘을밀대 농성’을 벌인 것도 이 때였다.
“터무니 없이 낮은 임금에 순하고 말 잘 듣는 조선여성들을 짐승같이 부려먹고, 때리고 성추행하며 돈벌이 잘 하다가 이제와서 임금을 깎겠단 말인가! 우리가 여기서 지면 전국 노동자들의 임금이 다 깎인다!” 그녀는 을밀대 꼭대기에서 이렇게 외쳤고, 많은 노동자들이 몰려와 호응했다.
그녀는 9시간 농성끝에 강제로 끌려내려왔지만, 끝내 ‘임금 불인하’ 각서를 받아냈다. 그러나 강주룡을 비롯한 20명의 强性여공은 해고됐다.
그녀는 평양 서성리 빈밀굴에서 굶주림과 신경쇠약으로 31세에 숨졌다. 최후는 비참했지만, 그녀는 ‘한국 최초의 여성노동운동가’로 기록됐다.
노동계출신 2명이 이번 개각에서 장관이 됐다. 이태복복지부장관은 ‘전민노련사건’으로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징역이 선고돼 7년여 옥살이를 했다. 대학 2학년때 민주투쟁을 하다가 제적돼 용산시장 지게꾼도 했으며, 악명높았던 이근안에게 어께관절 뽑히는 고문도 당했다.
방용석 노동부장관은 70년 의 ‘원풍모방 노동운동’당시 노조지부장을 했고, 15대 국회의원이 돼 국회환경노동위원을 했다. 고졸 長官이 드문데 ‘학력철폐’의 한 典型이다.
이번 개각을 두고 말이 많지만, 장관자리가 ‘물좋은 자리’가 아니라 ‘을밀대 지붕위’ 자기희생의 자리임을 이 두 장관은 알고 있을 것같고, 그래서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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