重光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2살때 제주도로 왔고, 제주중학 2학년까지 다녔다, 해병대를 제대하고 창녀들과 어울리다가 ‘문득 깨닳은 바 있어’ 중이 됐다. 중노릇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제사를 지내지 않나, 자살기도를 하지 않나, 갖은 기행을 하는 바람에 79년도에 조계종 승적을 박탈당했다.
원로화가 장욱진화백과 만났을 때 장화백이 중광의 누더기옷을 보고“중놈 치고는 옷 한번 제대로 입었네”란 말이 마음에 들어 둘은 친구가 됐고, 그림을 함께 그리는 사이가 됐다.
기인은 기인 답게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외수 등과 각별히 지냈고, 화가 이중섭과 절친한 사이였던 시인 具常과는 ‘유치찬란’이라는 시화집을 함께 펴냈다. 구상시인은 그의 달마도를 보고 “휘갈겨놓으니 달마의 뒤통수, 느닷없이 만난 은총의 소낙비더라” 했다.
그는 세상의 통념과 허위를 조롱하는 재미로 한 세상을 살았다. 수녀 한분이 찾아오자 대뜸 “얼굴이 가무잡잡한 것이 참 맛 있게 생겼다” 했다.
그는 글씨를 쓸 때 글자의 끝획부터 거꾸로 써올라갔으므로 글씨 갓 배운 어린애의 글씨였고 이것이 ‘중광체’였다.
그는 영화배우가 되기도 했다. ‘허튼소리’ ‘청송가는 길’ 에 출연했는데, ‘청송가는 길’에서는 대종상 남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그가 ‘뭘 닦아내는 걸레’란 해서 세척제 CF광고 모델도 했다.
그는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에 참석해서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사는 게다… 남한강에 잉어가 싱싱하니/ 탁주 한통 싣고 배를 띄워라/ 별이랑 달이랑, 고기랑/ 떼들이 모여들어/ 별들은 노래부르고/ 달들은 장구치오/ 고기들은 칼을 들어/ 고기회 만드오/ 나는 탁주 한잔 꺽고서/ 덩실, 더덩실/ 신나게 춤을 추는게다/ 나는 걸레”란 시를 낭독한 후 ‘걸레스님’이 됐다.
지난해 그는 “괘히 왔다 간다”란 주제로 달마그림 전시회를 열었다. 마음 다잡고 참선하며 달마를 열심히 그렸던 ‘안걸레’시절의 작품들이었다.
‘걸레스님 중광’이란 평전을 쓴 정휴스님은 “중광은 불교적 無碍(무애·거리낌 없음)정신속에 기인의 삶을 살다간 참 수행자이자 예술가였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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