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왕산 서쪽에 巨石 두개가 있다. 장삼 걸치고 갈모 쓴 두 스님이 서 있는 모습같다 해서 禪巖(선암)이라고도 한다. 후세 사람들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서울을 도읍지로 정한 무학대사가 서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서울시는 이 선바위를 ‘민속자료 제4호’로 지정해놓고 있다.
우리 옛조상들은 “훌륭한 사람이 죽으면 石佛이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모습으로 서 있는 바위’를 숭배해서 자식 낳게해달라, 병 낫게 해달라 빌기도 했다.
立巖(입암·선바위)란 이름을 가진 마을이 전국에 많다. 포항시 죽장면 매현리에 큰 바위 하나가 서 있어서 ‘입암리’라 부른다. 조선조 장현광선생이 우거했고, 가사문학의 대가 노계 朴仁老선생이 ‘입암가’를 지은 그 ‘문학의 현장’이다.
“無情히 섰는 바위 有情하야 보이나다/ 올려보니 더욱 높고 찔러보니 더욱 굳다” 입암가의 첫머리. 바위속에 든 神性과 자연의 道를 노래한 가사.
문경시 농암면 지동2리와 선곡1리 사이에 ‘선 바위’가 있다. 200여년전 이 자리에는 큰 바위 10여개가 서 있었는데, 과거길 선비들도 이 앞에서 술을 올려 참배했고, 부인들이 지극정성 자식 점지를 빌었다.
숱한 세월의 흐름속에서 숱한 홍수 태풍을 만나 바위들은 땅속에 묻히거나 쓰러져버렸다. 그러나 수년전 문경사람들은 “영험 있는 石佛들을 그냥 둘 수 없다”며 모두 캐내 일으켜세워놓고 ‘마을을 지키는 守護石’으로 모시고 있다.
경북 영양군 일월면 칠성리 강바닥에 묻혔다가 現夢(현몽)에 의해 세상밖으로 나온 ‘쌍동이 바위’가 ‘하천법’ 위반으로 다시 강바닥에 되묻혔는데, 군민들의 비난이 빗발치자 다시 ‘정식 채취허가’를 받아 쌍동이바위가 다시 캐내어졌다. 꿈을 꾼 출향인사 박갑종씨는 꿈에 ‘칠성님’이라 하는 노인이 나타났으니 巨石은 7개가 있을 터. 앞으로 5개 를 더 발굴할 것이라 한다. 마을이름 ‘일월면 칠성리’와 맥이 통한다. 日·月(음양)과 5行을 합하면 7이 된다.
영양군 日月山에는 우리고유의 민족신앙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서 ‘세계토탬공원’을 만들 조건이 갖춰져 있다. ‘자연숭배사상과 민족신앙’을 영양을 중심으로 되살려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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