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설성경교수는 홍길동을 줄기차게 연구하는 학자다. 최근에는 ‘홍길동의 삶과 홍길동전’이란 책을 펴냈는데, 퍽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다. 허균은 ‘모종의 게이트’를 암시하기 위해 ‘실제 사실 60~70%에 道術을 가미해 홍길동전을 썼다’는 것이다.
홍길동은 15세기 말 연산군시절 한 고위관리의 서자로 태어나 신세를 한탄하다가 할빈당의 두목이 되고, 고관대작들을 혼내주다가 체포된다. 그러나 그는 연산군과 먼 친척이 되기 때문에 처형되지 않았고, 유배지로 향하던 도중 ‘모종의 뒷거래’로 탈출을 하고, 그 길로 일본 최남단 琉球(유구)로 가게됐다는 것이 설교수의 분석이다.
이 분석이 맞다면 유구열도는 분명 ‘홍길동의 왕국’이다. 어지간한 일본지도에는 잘 나타나지도 않은 작은 섬들이 여럿 모여 있는 유구. 처음에는 독립왕국이었으나 그 후 일본본토에 흡수됐고, 제2차세계대전때는 미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섬나라이다.
이 섬의 대표적 유적은 ‘守禮之門’이다. 2층 一柱門으로 돼 있는데, 조선의 건축양식 그대로다. 처음에는 ‘待賢門’이라 했다. 외국 使臣들을 맞이하는 관문을 거창하게 세웠던 것도 조선조의 풍습이다. 이 일주문은 1528년에 세워졌으니 연산군이 쫓겨난 후 중종28년의 것이다. 그렇다면 홍길동이 유구국을 세우고 이 ‘조선식 건축물’을 세웠음직하다.
이 유구국은 조선과 중국에 가까워 이들과 빈번한 교류를 가졌고, 지금 남아 있는 유적과 관습들이 이를 증명한다. 이 왕국에는 科擧제도가 있어 士族들은 글을 읽고 여자들은 생업에 종사했다. 제주도와 흡사하다.
유구열도중에 八重山이란 섬이 있는데, 죄인들을 보내는 유형지였다. ‘새벽에 일어나 자정까지 남자는 농삿일, 여자는 길쌈’을 해야 했고, ‘반난을 예방하기 위해’ 노동요를 많이 보급해 宣撫했다고 한다.
이 민요들과 민속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잘 연구해보면 ‘유구왕국과 홍길동’의 관계가 더 확연히 드러날 듯하다. 이 섬이름이 지금은 오키나와로 바뀌었지만, 역사를 바꿀수는 없는 것. 월드컵을 함께 나란히 개최하게된 것도 우연이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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