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잠 김시습이 어느날 한강변을 지나다 ‘압구정’이라는 정자에 들렀다. 거기 세조의 심복이자 실세인 한명회의 시가 걸려 있었다. ‘靑春扶社稷 白首臥江湖(젊어서는 사직을 받들고 늙어서는 강호에 누워있네)’. 김시습은 그 시에서 ‘扶’자를 ‘亡’자로, ‘臥’자를 ‘汚’자로 고쳐 써놓고 사라졌다. ‘젊어서는 나라를 망하게 하고 늙어서는 세상을 더럽힌다’
사람들은 뜻이 바뀐 시를 보고 통쾌해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한명회는 그 시를 없애버렸다.
고급을 막론하고 세도가의 자화자찬은 민중들의 조소꺼리였다. 옛 지방수령이 있었던 고을에 가면 으례히 꼴불견을 만난다. 관청입구나 마을입구 도로변에 즐비하게 서 있는 송덕비가 바로 그것들이다. 벼슬아치들의 행적을 칭송하는 송덕비는 ‘불망비(不忘碑)’ ‘선정비(善政碑)’ ‘시혜비(施蕙碑)’ ‘추모비’로 불리어지기도 한다.
송덕비는 조선시대에 많이 세워졌으며 특히 나라가 쇠망의 길을 접어드는 말기에는 무더기로 세워졌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돈에도 욕심이 많지만 명예욕도 컸다. 중앙의 세도가를 비롯, 지방수령까지 자신의 치적과는 관계없이 송덕비 세우기를 갈망했다. 이같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린 일족이나 그 권세를 업고 잇속을 챙기려던 추종자들이 송덕비세우기 경쟁을 벌였다.
송덕비건립 노역에 동원된 민초들의 조소와 원성에도 불구하고 ‘송덕비 신드롬’의 폐단이 심화되자 한때 국법으로 송덕비건립을 금지하기도 했다.
오늘의 정치인들도 권세나 부(富)만큼 명예 탐하기는 옛날 세도가에 못지않다. 그들의 의식속엔 ‘송덕비 신드롬’이 웅크리고 있다. 그러한 의식이 확연히 드러난 것이 교과서다. 김영삼정부까지의 공과(功過)를 고루 실었으나 김대중정부에 대해선 치적 일변도로 기술한 내년 고교 2~3학년용 한국근대사의 일부 교과서가 그것이다.
교과서는 국민의 공통적 교육목표를 담은 책인만큼 객관적 평가와 잣대가 요구된다. 권력에 아부하는 편향된 교과서야말로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나 조선조의 송덕비와 무엇이 다르라. 아직 끝나지 않은 정권을 칭송하는 교과서에서 ‘현대판 송덕비’보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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