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잠자리는 생긴 것이 잠자리 비슷할 뿐 그와는 전혀 다른 날벌레다. 진짜 잠자리는 알을 물속에 낳는데, 풀잠자리는 뭍에서 낳는다. 애벌레시절 3번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되는데, 이 때 고치를 짓고 그 속에 들어가 번데기로 있다가 좀 지나 날개를 달면 고치를 뚫고 밖으로 날아나온다는 점에서 누에 나방과 비슷한 곤충이다.
풀잠자리는 고치를 예쁘게 짓는다. 누에처럼 명주실을 길게 뽑아 기둥을 만들고 그 기둥끝에 쌀알 같은 고치를 만든다. 다른 벌레들이 잘 덤비지 못하게 하려는 지혜다. 까치들이 높은 나뭇가지에 집을 짓는 기법과 같다.
번데기가 ‘날개 달린 곤충’으로 변신하면, 누에나방 처럼, 입으로 어떤 물질을 내놓아 고치에 구멍을 뚫고 세상밖으로 나오고, 2~3개월 사는 동안 몇번 알을 낳는다. 풀잠자리가 알을 낳는 장소는 대체로 진딧물이 많이 서식하는 곳이다.
알에서 깨어나온 애벌레는 진딧물을 사정 없이 잡아먹는다. 제일 좋아하는 먹이가 진딧물이고, 작은 나방의 알도 잘 먹는다. 풀잠자리는 후손이 어려움 없이 살아가도록 지혜를 발휘해서 무궁화나무나 습기 많고 어두워 진딧물이 번식하기 쉬운데에 알을 낳는다.
1997년 여름, 경기도 광주시 모 사찰에서 우담바라꽃이 피었다고 난리를 쳤다. 금동여래불 가슴에 하얀 꽃송이 24개가 핀 것이다. 이 소문이 나자 수백명의 신도들이 모여들어 열심히 경배를 했다. 절에서는 “관세음보살님 우담바라로 나투셨네” “우담바라꽃이 피었네”란 쓴 플래카드를 큼지막하게 내걸었다.
‘우담바라 소동’이 여기저기 잇따랐다. 볼품 없는 날벌레가 ‘잠자리’족보에 오른 것도 과분한데, 졸지에 ‘존귀한 몸’이 돼버렸다. 풀잠자리가 고치를 뚫고 나오면 그 구멍이 찢어져서 꽃처럼 보일뿐인데….
풀잠자리는 그래도 유용한 곤충이다. 애벌레가 진딧물을 포식하는 천적이니 ‘친환경 천적농법’에 활용된다. 일본에서는 풀잠자리를 인공사육해서 딸기밭에 놓아두기도 한다. 애벌레 2마리면 딸기 한포기 정도를 진딧물에서 지켜준다.
올해도 전국각지에서 우담바라꽃이 피고 있다. 내친 김에 풀잠자리를 사육해서 무궁화에 적선 좀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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