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살이 보살이다. 말이 씨된다.” 입 함부로 놀리는 것을 경계하는 속담. 말에는 주술력이 있는지 뱉은 말대로 결과가 나오기도한다. 말만 많고 행동이 없는 사람을 가르켜 ‘NATO’라 하는데,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아니라, No Action Talking Only의 머리글자를 딴 것. 우리관료사회엔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NATO’들이 판을 친다.
미국연방준비제도 이사회 그린스펀의장과 박승한국은행총재는 다 중앙은행총재이나 언행면에선 대조적이다. 그린스펀이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반면 박승총재는 행동보다 말이 늘 앞선다.
‘그린스펀 화법’이라는 것이 있다. 정책에 관한한 직접적인 언급 없이 늘 우회적으로 반죽만을 울리는데서 나온 말이다. 한때 그의 애매모호한 말 한마디에 미국증시가 뒤집어졌다. 직접화법을 쓰지 않기때문에 그린스펀 발언에 이런저런 해석이 붙어 증시가 춤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금융시장 월가는 그린스펀의 입만 쳐다본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린스펀 자신이 자기말에 대해 “내말이 너무 분명하다 싶으면 잘못 이해한 것이 틀림없다”며 자신의 우회화법을 자인했다. 듣는 사람의 자유로운 해석에 맡긴다는 이러한 그린스펀화법은 중앙은행최고책임자로서 몸에 벤 것. MIT대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은 “어떤 말을 전혀 안하면서 한것처럼 하는 것도 FRB의장의 직무중 하나”라고 풀이했다. 말 앞세우지 않으면서 소신껏 일을 하기때문에 대통령도 그를 어쩌지 못한다.
박승한은총재의 경우 행동보다 말이 앞서 자주 구설수에 오른다. 지난 4월 한은총재로 취임한후 시도때도없이 ‘금리인상’을 남발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열린 한국은행금통위원회는 콜금리를 현수준에서 동결해버리는 통에 금융시장에 혼란만 가져왔다. 행동보다 말이 앞서 화를 자초하는 박총재를 두고 세간에는 ‘박승자박(自縛)’이라는 신조어까지 유포되고 있다.
그는 수년전 건설부장관시절에도 ‘아파트분양가 자율화’발언파동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난 전력도 있다. 우리나라 고위직 경제관료들의 변화무쌍 조변석개 발언은 비단 박총재뿐만아니다. 대개가 말이 앞선다. ‘NATO관료’때문에 국민만 갈피 못잡고 골병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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