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비관자살하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 한다. 니체나 쇼펜하우어는 자살을 ‘실존적 결단’으로 봤으나, 헤겔이나 칸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위반이라했다. 심리학자들은 자살기도의 4%만이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며, 자살자 대부분은 알콜 복용후 결행했다고. 이같은 조사결과는 자살이 매우 충동적임을 반증한다.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이 청나라군사에 포위되자, 성안에 있던 선비들 사이에서는 자살하느냐 마느냐가 큰 쟁점이 됐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은 머리카락 하나라도 훼손해서 안된다는 것이 유학자의 더목이었기 때문. 당시 정승이던 장유(張維)는 이렇게 단안을 내렸다. “임금을 모시고 있다가 적에 잡혀 항복을 강요당할때 굴복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 내손으로 내목을 찌르지 않더라도 적이 대신 칼질을 해주지 않겠는가” 조선조선비들의 자살관이 엿보인다.
요즈음 우리사회에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중의 하나가 자살이다. 통계청은 지난해 우리나라 자살이 인구 10만명당 1,913명으로 10년사이에 두배로 늘어났으며 교통사고 사망률을 앞질렀다고 했다. 이 수치는 OECD국가중 4번째로 높다는 것. 특히 최근들어 ‘생활고 자살’이 급증, ‘민생을 내팽개친 정치가 자살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얼마전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은 “자살률이 경제성장률과는 81.5% 마이너스 상관관계를, 실업률과는 82.5%의 플러스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연구보고서를 내놨다. 살아가기가 어렵고 실업률이 높을수록 자살자가 늘어난다는 것.
경북경찰청은 올 7월까지 도내 414건의 자살사건중 경제난자살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반 고흐’는 자살직전애 동생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우리들은 현실을 거역할 수 없고 또 거기에 복종할 수도 없다. 병이 드는 것은 현실때문이기에 그 병은 치료되지 않는다” 고흐는 자기자신에 시달렸다기보단 가난이란 현실에 시달렸던 것.
얼마전 국내에 처음으로 ‘자살예방약’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클로자릴’이란 이 약은 임상실험서 자살행동 위험률을 26% 감소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최선의 자살예방약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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