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후궁중에서도 ‘조선조 3대요부’로 불려지는 연산군때의 장녹수, 광해군의 김개시, 숙종의 장희빈 등은 왕의 총애를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비참한 삶을 마친 예도 있으나, 고종때 영친왕의 친모인 엄비는 민비가 시해된뒤 후궁으로서 최고품계인 ‘빈’을 뛰어넘어 왕비가 되기도 했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 등 왕을 낳은 7명의 후궁들을 별도로 사당을 지어 모신 곳이 지금 서울 궁정동 청와대경내에 있는 ‘칠궁(七宮)’이다.
후궁이라 해서 다 부귀영화를 누렸던 것은 아니다. 왕의 승은을 학수고대하며 평생을 외로이 늙어가는 후궁도 많았다. 왕이 승하하면 개가도 할수없었으니, 여승이 되어 선왕의 명복을 빌며 수절했다. 과부가 된 후궁여승들이 모여사는 절을 ‘정업원’이라고 했다.
얼마전 한나라당 여성위원장 김정숙의원이 총선을 앞두고 각당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유명 여성 영입각축전’에 대해 “각당이 정치개혁을 앞두고 마치 왕이 후궁을 간택하듯이 이름좋은 여성을 영입하면서 광고를 하고, 후궁처럼 써놓고선 바로다시 버린다”면서 ‘후궁론’을 편후 “당내에 여성인재들이 즐비한데 새여자를 찾고 있다. 새여자도 6개월만되면 헌여자가 된다”고 꼬집었다.
우리 국회여성의원수는 16명으로 전체273명의 5.9%에 불과, 선진국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후궁론’에 대한 시비가 없지 않겠지만, 많은 여성들이 국회에 진출, 양성평등 정치개혁의 견인차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