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검찰측 새로운 증인 증거 능력 부족" …스리랑카인 용의자, 1심에 이어 항소심도 무죄

▲ 11일 오전 대구에서 발생한 여대생 사망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스리랑카인K(49)씨가 항소심 선고공판 출석을 위해 대구고등법원 으로 들어서고 있다. 유홍근기자 hgyu@kyongbuk.com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1998년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이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피해자 정은희(당시 18세)양을 성폭행한 스리랑카 남자 3명의 범행을 입증할 또 다른 스리랑카인이 17년 만에 등장하면서 이날 항소심 결과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재판부는 "새로운 증인의 진술에 증거능력이 부족하다"며 "성폭행 가능성은 있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이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이에따라 증인을 찾기 위해 4개월여 동안 국내에 체류하는 모든 스리랑카인을 전수조사하며 결정적 증인 확보로 항소심에 자신감을 내비쳤던 검찰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건 당시 대학교 1학년이던 정양은 1998년 10월 17일 오전 5시 10분쯤 대구 구마고속도로 위에서 23t 트럭에 치여 숨졌다.

집에 가던 여대생이 고속도로에서 숨진 점, 정양 속옷이 사고 현장에서 30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된 점 등 수상한 부분이 많았지만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하지만 2013년 5월 정양 아버지의 고소로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정양 속옷에 묻어 있던 정액 DNA의 주인을 찾아내며 정양을 죽음으로 내몬 범인들이 15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는 듯 보였다.

범인으로 지목된 이는 2010년 여고생 성매매 혐의로 DNA를 채취당한 스리랑카인 K씨였다.

검찰은 정양이 K씨와 D씨, B씨 등 스리랑카인 3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직후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넘어 도망치다 트럭에 치인 것으로 보고 K씨를 기소했다.

D씨와 B씨는 각각 2005년과 2001년 스리랑카로 간 상태여서 K씨만 법정에 세웠다.

하지만 1심 법원은 공소시효를 문제삼아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특수강도강간죄로 기소했으나 특수강도죄가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수강간죄는 공소시효 10년으로 1998년 사건은 아예 처벌이 불가능해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강간죄로 기소했으나 강도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검사는 정양이 가방에 넣어둔 책과 학생증, 현금 3000원가량을 범인들이 빼앗아갔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그 물건을 K씨가 가져갔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이후 검찰은 경찰과 함께 1998년 사건 발생 당시 한국에 있었던 모든 스리랑카인을 찾아 나섰고 그 중 34명이 아직 한국에 머물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사건 내용을 몰라 애를 먹던 검찰은 K씨의 공범 D씨로부터 사건 내용을 상세히 들었다는 증인 A씨가 찾아냈다.

검찰이 확보한 A씨의 진술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1998년 사건 발생 직후 공범 D씨와 술자리를 가졌다는 A씨는 지인이던 D씨가 술에 취하자 "아주 어린 한국 여학생에게 몹쓸 짓을 했다"면서 성폭행과 여학생이 도망치던 과정 등을 자세히 털어놨다고 한다. 그러면서 D씨는 A씨에게 "나와 B가 여학생을 붙잡고 있을 때 이미 성폭행을 한 K가 가방을 뒤져 책과 학생증을 발견했는데, 학생증에 적힌 나이가 너무 어려 놀랐다"면서 "책은 K가 갖고갔고 학생증은 내가 갖고왔다"고 말했다는 것. A씨가 '도저히 못 믿겠다'고 말하자 공범 D씨는 학생증에서 떼어냈다는 정양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줬다고 A씨는 검찰에서 진술했다.

A씨는 검찰에 이어 최근 법정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증언했으며 검찰은 이 대목을 범인 일당이 정양의 소지품을 빼앗은 사실을 입증할 결정적 증언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A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정양 소지품 훔쳐갔다는 명확한 증거도 없어 특수강도강간죄를 입증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따라 검찰은 즉각 상고 방침을 밝혔지만 이번 사건이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 여대생 성폭행 사망 일지

△ 1998.10.17 = 오전 5시 10분께 대구 달서구 구마고속도로(현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정양이 23t 트럭에 치여 사망. 당시 18세. 오후 1시 사고현장 인근서 정양의 속옷 발견.

△ 1998.12.21 = 경찰 단순 교통사고로 사건 종결. 트럭운전사 최모씨 혐의 없음 처분.

△ 1999.3 = 경찰 국과수에 속옷 감정 의뢰. 속옷에서 정액 검출했지만 DNA는 발견하지 못해 신원 확인은 실패.

△ 2000.9 = 유족들 담당 경찰관 등을 직무유기로 고소. 각하 처분.

△ 2001 = 유족들 불기소 처분에 헌법소원 제기. 기각 결정.

△ 2007 = 유족들 강간살인 혐의로 트럭 운전사 고소. 혐의없음 처분.

△ 2010 =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일명 DNA법) 시행.

△ 2011.10 = DNA법에 따라 청소년에게 성매매 권유 혐의로 붙잡힌 스리랑카인 K씨에게서 DNA 채취.

△ 2013.6.5 = 국과수 정양 속옷에서 발견된 정액과 K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사실 확인. 검찰 재수사 착수.

△ 2013.8 = 대구지검 K씨 체포.

△ 2013.9 = 대구지검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K씨 구속기소. 2001년과 2005년에 각각 고국으로 돌아간 공범 2명은 기소 중지.

△ 2014.5 = 대구지법, K씨 무죄 선고. 증거 불충분 이유.

△ 2014.6 = 검찰 항소 제기.

△ 2015.3 = 스리랑카인 '핵심 증인' 사건 내용 증언

△ 2015.5 = 대구지검,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 핵심 증인 진술 반영.

△ 2015.8.11 = 대구고법 무죄 선고. 증인 진술 신뢰성 없다고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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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기자
이기동 기자 leekd@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실, 국회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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