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종교든 가슴에 믿음 간직한 사람은 다들 선하지 않으랴

▲ 이상식 시인
왜 사람들은 종교를 믿는가. 신앙심이 돈독한 지인들의 응답은 한결같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렇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영생불멸을 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그 누구도 사후 세계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한다. 그래서 종교는 말한다. 그 사실은 무조건 믿어야 하는 진리라고.

논어 선진 편을 보면 공자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다. 공자는 음악을 좋아했다. 누군가 노래를 멋지게 부르면, 앙코르를 청한 뒤에 함께 불렀다고 한다. "사람을 섬기는 것도 못하는데 신을 섬기는 것을 어찌 하겠느냐. 삶도 아직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 물론 공자는 신을 부정한 게 아니다. 내세보다는 현세의 생활을 강조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신의 존재는 믿지만 종교는 갖지 않는다. 나름의 이유는 있다. 주기적으로 세금처럼 요구하는 헌금과 일상의 자유로움을 제한하는 구속감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는 순기능이 많아서 가급적 필요한 도덕관념이라고 여긴다. 미국의 심리학자 샤리프가 종교 활동과 범죄 발생률의 관계를 분석했더니, 지옥을 강조하는 종교를 믿는 나라에서 범죄가 훨씬 적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러시아 정교회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로서, 동방정교회의 구심점을 이루는 자치 교회이다. 특히 상트페테르부르크 최고의 정교회인 넵스키 수도원은 그 묘역에 유명 예술가의 무덤이 많아서 발걸음이 끊임없다.

여행을 하노라면 '그날 그 시간'이 아니면 구경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넵스키 수도원의 주일미사가 그러하다. 러시아어로 집전되는 성스러운 광경은 황홀했다. 성당 안은 의자가 없었다. 다들 나란히 서서 미사를 드린다. 벽면과 기둥엔 성화를 그린 액자가 빼곡히 걸렸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여신도가 성호를 긋고 성화에 키스하는 표정은 진솔하다. 대리석 바닥을 스치는 신발 소리만 들릴 뿐 엄숙하고 묵직한 분위기. 어떤 종교든 가슴에 믿음을 간직한 사람은 다들 선하지 않으랴.

열 시 정각, 본당 실내 정면의 문이 열리며 합창과 함께 미사가 시작됐다. 드넓은 공간에 은은하고도 경건하게 울려 퍼지는 성가. 나직한 사제의 축원 기도가 심금을 파고든다. 스르르 카타르시스에 빠지면서 여정의 피로가 풀리는 듯한 안락감.

백팩을 맨 나의 왼편엔 차가운 표정의 백발노인이, 오른편엔 젊은 여자가 있었다. 노인은 나무토막처럼 서서 미사 장면만 응시하는 나를 힐끔거렸다. 모자를 들고 헌금을 거두는 이에게 지폐를 내밀었다. 금세 노인의 표정이 바뀌더니 뭐라 말을 건네고, 여자 또한 목례를 하며 미소로 반겼다. 금전으로 표현되지 않은 성의는 신심이 아니라는 뜻일까.

성당 인근의 공동묘지를 산책했다. 무덤이라기보다는 공원에 들른 기분. 신록이 울창한 숲속에 개성 있는 묘비들이 즐비하다. 예쁜 석조 조각품 전시장 같다. 작곡가 차이콥스키와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무덤 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 한참을 쉬었다. 비노니, 당신을 찾은 이방인에게 문운의 축복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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