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 있어 고통은 필연적 인간에겐 고통 견디는 불굴의 의지 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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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국(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노르웨이 사회에서 즐겨 인용하는 이야기 가운데 '어부와 불기둥'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어부가 어부가 되기를 원하는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법을 가끔씩 가르쳐 왔다.

어느날 이 어부는 평소와 같이 부인이 준비해준 음식을 가지고 두 아들을 데리고 먼 바다로 나갔다.

그날따라 바람이 거세게 불고 파도가 거칠어져 고기잡이를 하던 그물을 거두고 집으로 되돌아 가기로 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비바람까지 몰아쳐 왔다. 배가 파도에 휩쓸리며 방향을 잃고 말았다. 벌써 밤이 깊어 사방이 칠흙으로 변해 어느 곳이 육지로 가야 되는지를 몰랐다.

수십년을 바다에서 살아온 어부였지만 그만 절망감에 빠졌다.

그는 두 아들에게 "사방이 너무 어두워서 방향을 잡을 수가 없구나" 하며 그는 노 젓기를 포기해 버렸다. 방향도 모른채 노를 저었다간 자칫 파도에 배가 뒤집힐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둘째 아들이 소리를 쳤다.

"아버지 저쪽이에요.저기 불기둥을 보세요.우린 이제 살았어요. 저리로 노를 저어 갑시다"

"그래,저 불이 우릴 살릴수 있겠구나!"

세부자는 있는 힘을 다해 불기둥 방향으로 노를 저었다. 가까스로 부두에 도착한 어부는 살아왔다는 기쁨에 두 아들을 부둥켜 안고 껑충 껑충 뛰었다. 부두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던 부인은 살아온 남편과 아들을 보고도 기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남편이 아내를 껴안으며 "여보 우리가 이렇게 살아 돌아 왔는데 기쁘지도 않아요?"

그러자 부인이 힘없는 목소리로 "여보! 오늘 저녁때 내가 잘못해서 불을 내었는데 우리집이 모두 타버리고 말았어요.여보,어떡해요."

어부는 이말을 들은 순간 "아하!"하고 탄성을 터트렸다. 우리가 바다에서 본 그 불기둥이 우리집이 타는 것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아내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여보! 미안하다니요.그 불기둥 때문에 우리가 살아서 돌아온 거요. 사방이 어두워 배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던중 그 불기둥을 보고 노를 저어 돌아왔소.당신이 우릴 살린 거요."

이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똑같은 불기둥이었지만 한쪽에서는 집이 불타는 재앙의 불기둥이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죽음의 바다를 헤치고 나올수 있는 생명의 불기둥이었다.

여기에서 불기둥은 우리들의 삶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고통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통을 어느쪽에서 보고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 고통의 상황이 달라 질수가 있다는 이야기다.

일부의 사람들은 고통의 불기둥에 직면하게 되면 자포자기로 파멸의 길로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

우리 인간에게는 고통을 견뎌내는 불굴의 의지가 항상 내재되어 있다. 가슴 깊숙이 숨어있는 그 힘으로 파괴와 죽음의 불기둥을 회생과 생명의 불기둥으로 만드는 의지를 보여야한다.

독일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 나온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크는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고통은 그 고통의 의미를 찾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함께 수용소 생활을 했던 사람들 중에 삶의 의미를 포기한 사람들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날을 생각하거나 분명한 미래의 계획을 가진 사람들은 살아야 한다는 삶의 끈을 놓지 않고 고통을 견뎌내는 인내심으로 그 지옥 같은 수용소 속에서도 스스로 살아 남을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적었다.

이는 고통의 상황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하는냐에 따라 변모시킬수 있다는 이야기며 이유있는 고통은 있어도 의미없는 고통은 없다는 사실을 가르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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