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들 물의 속성 본받아 물과 같은 순리로 백성 대하면 국민의 신뢰·후원 얻는다

▲ 하재영 시인
가을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신다. 가을비는 수확하는 손길을 방해하기 때문에 반길 수 없는 손님처럼 여겼다. 지난 주말 단풍을 구경하러 형산강 상류 기계천을 따라 죽장 부근을 찾았다. 감나무는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색 물감을 칠하고 있었다. 흐린 날임에도 들과 산은 인간의 손으로 그릴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젖은 콩대를 손질하는 농부를 만났다. "요즘 가을비가 자주 내려서 걱정이네요" "어쩌겠어요. 하늘의 뜻인 걸…."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계절마다 높낮이를 조금씩 달리하며 흐르는 형산강 강물을 보며 콩대를 세우던 농부의 말을 떠올렸다.

'하늘의 뜻?'

며칠 전 충남 서부지역 7개 시군에 제한급수를 실시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가을비가 내렸지만 제한급수에는 큰 영향을 줄 수 없다고 한다. 타들어가는 저수지 바닥을 보면서 한 잔의 물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됨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물은 넘쳐도 문제고, 부족해도 문제다.

우리 조상들은 홍수에 대비해서 나무를 심었고, 저수지를 만들었으며 비가 많을 때에는 기청제도 올렸다. 가뭄 역시 인간의 힘으로 쉽게 막을 수 없는 재해로 사람들은 지혜를 모았다. 준설, 용수개발, 관정, 댐 건설 등 가뭄 대안을 지금도 모색하고 있지만 내년 봄까지 이 가뭄이 지속될 것이라고 해서 걱정이다.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물처럼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물이다. 효용 가치를 떠나 물은 우리 삶의 길에서 정서적으로 많은 것을 시사하고 가르친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는 물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상선약수(上善若水)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능히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한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도(道)에 가깝다. 머물 때는 머무는 곳을 잘 선택하고, 마음을 쓸 때는 연못처럼 깊게 하고, 남들과 함께 할 때는 자애롭게 하고, 말을 할 때는 믿음 있게 하고, 다툼이 없으므로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도덕경의 상선약수를 읽으며 물의 중요성, 순리성, 겸양을 생각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할 때가 있다. 그러기에 물의 속성은 인간의 정치, 경제사회에서도 좌우명처럼 인용된다. 노자와 같은 철학자들은 지도자들이 물의 속성을 본받아 물과 같은 순리로 백성을 대해야 한다고 했다.

우러러 보이는 정치적 권위도 민중이라는 낮은 곳에서 출발했고, 결국 낮은 곳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많은 지도자들이 출발할 때의 초심을 잃고 권위만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권력의 힘이 물과 같이 낮은 곳으로 흐를 때 국민은 지도자를 신뢰하고, 힘들어도 참고 인내하며 후원하게 된다.

"어쩌겠어요. 하늘의 뜻인 걸…."

젖은 콩대를 잡으면서 자연의 섭리에 순종하는, 자신의 일에 충실한 농부의 말은 아직도 우리 지도자들을 믿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통치가 물 흐름처럼 더 자연스러울 때 우리 사회는 보다 발전된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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