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31명 모두 출연 70분짜리 산골마을 일상 담아…제작비 0원 영화 '초황령'

▲ 상주시 은척면 황령1리 주민들이 배우로 출연해 영화 '초황령'을 촬영하고 있다.
"영화가 온통 사투리 투성인기라", "그래도 본 사람들은 다 재미있다카네", "그라믄 성공한 거 아이가", "평생 농사만 짓던 촌 영감 할마이(할머니)가 꿈에서나 할 수 있는 영화배우도 다 해보고 참 세상 좋아졌더라고"

상주시에 있는 한 산골마을 주민들이 감독과 제작, 편집, 출연 등을 모두 맡아 제작한 영화를 최근 세상에 공개하면서 쏟아낸 말들로 이 순간만은 너도나도 영화배우가 다 됐다.

특히 이 영화는 초등학생에서 아흔을 넘긴 어르신 등 한 마을 주민 전부가 전문가 도움없이 직접 영화를 만들어 의미가 매우 크다.

주민 전부가 영화를 찍은 마을은 21가구 31명이 사는 상주시 은척면 황령 1리 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영화가 만들어지던 지난 8개월동안 단 한명도 빠짐없이 참여해 동네 일상을 담은 70분짜리 영화 '초황령'에 출연했다.

초황령은 황령 1리 마을의 또 다른 지명이다.

영화는 자신의 실수로 영농자금을 받지 못한 주민이 다른 주민들과 갈등을 빚지만 다시 친해진다는 내용을 상주에서 사용하는 사투리 그대로를 재미있게 담아냈다.

출연 배우는 이 마을 남녀노소 주민 31명과 이웃마을 사람 등 총 41명이고 배우들의 평균 연령은 무려 70세가 넘는다.

영화 제작자 겸 감독은 이 마을에서 젖소 100여마리를 기르는 '산울타리 목장' 주인 박동일(53)씨고 조감독은 박씨의 부인 권순자(48)씨다.

영화 촬영도구는 박 감독이 가지고 있는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고 배우들의 출연료는 없어 제작비는 0원이다.

박 감독은 "3년 전부터 주민들의 활동을 담은 영상물을 찍기 시작했고 마을회관에 설치된 빔프로젝터를 통해 보여드렸더니 모두들 너무 좋아했다"며 "어르신들은 마치 텔레비전에 나온 아이처럼 동심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고 말했다.

이에 박 감독은 올 초 마을 주민들에게 영화를 찍자는 제의를 했고 마을 사람들도 흔쾌히 응했다는 것.

그러나 앞선 의욕과는 달리 주민들의 농사일이 가끔 발목을 잡았고 어르신들의 대사 외우기가 잘 안돼 NG가 난무하면서 하루종일 찍어도 영화로 쓸만한 분량은 단 1분 남짓에 불과해 고충도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완성됐고 마을 사람들은 물론 상주시민 전체가 환호하는 영화가 됐다.

지난 1일 상주시청에서 열린 시사회에서는 시민과 공무원들의 호평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영화를 끝까지 관람한 이정백 상주시장은 "영화 속과 영화 밖 주민들이 한결같은 진짜 아름다운 영화를 봤다"며 "쉽지 않은 도전과 성공을 이뤄낸 황령 1리 주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주인공을 맡은 안재정(52)씨는 "이런 재미있는 경험을 두 번 다시 할 수 있겠냐"며 "주민들과 관람객들의 높은 호응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우리 동네에는 배우들이 많은 만큼 올 겨울에는 장비를 더 보강해 오이농사를 짓는 젊은 부부를 주인공으로 농촌의 현실을 그린 단편영화를 찍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성대 기자
김성대 기자 sdkim@kyongbuk.com

상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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