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의 비릿한 풍경에서 비롯되어 아스라한 향으로 마무리되는 오묘한 맛의 정점" 이기황의 '과메기의 추억' 일부다. 올해는 겨울 같지 않은 날씨로 과메기를 제대로 숙성시키기가 어려운데다 수요가 3분의 1정도 줄어 포항 구룡포의 생산어민들이 울상이다.

과메기 어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나무 꼬챙이로 청어의 눈을 꿰 말렸다는 뜻의 '관목(貫目)'이 포항사람들의 발음으로 변형돼 '과메기'가 됐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져 있다. 하지만 이 과메기 어원에 대한 반론도 많다. 순우리말 '과메기'를 비슷한 한자로 옮겨 '관목'이 됐다는 주장이 있다. '관목'은 청어의 두 눈알이 통해서 말갛게 마주 비친다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옛 기록이 있다. 포항지역 연세 많은 어른들은 과메기를 만들 때 주로 짚으로 묶어 말렸지 대나무나 다른 나무 꼬챙이로 눈을 꿰 말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순박한 어민들이 고기의 눈을 나무로 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과메기를 먹어 온 영일 호미수회 서상은 회장은 과메기 이름에 대해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포항의 청어 주산지가 서 회장의 고향 호미곶 일대였다고 한다. 이 곳에서는 겨울철이면 주민들이 다 처치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청어가 잡혔다. 내장이 흘러내리지 않게 고기의 배가 위쪽으로 가게 짚으로 10마리씩 묶었다. 10마리 묶음 둘의 끝을 다시 묶은 것이 한 두름 20마리다. 이렇게 해서 장대나무에 한 두름씩 척척 걸쳐 말린 것이 과메기라는 것.

서 회장은 이렇게 걸어둔 과메기는 봄보리가 피기 전인 4월께 제대로 숙성된 맛을 낸다고 한다. 쌀독에 양식이 다 떨어져 갈 때 얼다 녹았다 맛이 든 과메기를 쭉쭉 찢어서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고 한다. 서 회장은 보릿고개를 넘긴다는 뜻의 '과맥(過麥)'에서 '과매기'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생생한 현지 원로의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물고기를 꿸 때는 아가미에서 입으로 꿰지, 눈을 꿰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과메기 정설에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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