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의 호를 딴 횡계 계곡가 자리…맑은 물 깊은 계곡에 고문진보 펼쳐 놓은 듯

▲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에 있는 조선 시대 누각 옥간정을 비추는 겨울 햇살이 따사롭다. 지난 1992년 7월 18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70호로 지정됐다.

옥간정은 이름그대로 돌사이로 옥같이 맑은 물이 흐르고 그 위에 지은 정자다.

옥간정은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 횡계계곡에 있다. 영천시내에서 보현산 천문대가 있는 별빛마을 쪽으로 차로 40분 이상을 가는 먼 길이다.

횡계는 대한민국 별의 메카 보현산천문대가 있는 보현산 자락의 계곡이다. 계곡 대부분이 암반으로 이뤄져 물이 맑고 깨끗하다.

하류로 내려오면서 청송에서 흘러오는 옥계와 합류해 자을천이 된다.

자을천은 이 천의 이름을 딴 자천리 등 몇 개의 마을을 지나면서 이름을 고현천으로 바꾼 뒤 영천시내를 가로지르는 금호강으로 합류된다.

횡계 입구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평범한 천이다. 그러나 조금만 보현산 쪽으로 들어가면 골이 깊어지다가 '모고헌(慕古軒)'에 이르러서는 골 깊고 물이 맑은 절경이 펼쳐진다.

모고헌은 지수 정규양이 1701년 세운 정자로 당초 태고와로 이름지었으나 나중에 고쳐 불렀다. 모고헌에서 150여m 더 계곡을 올라가면 옥간정이 나온다.

▲ 옥간정 처마 위에 흰 눈이 쌓여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정경희作

옥간정은 1716년에 훈수 정만양과 와 지수 정규양 형제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강학당이다. 정면 3칸, 측면 4칸반의 'ㄱ'자형 누각 건물이다. 정자 앞으로 목련 은행나무, 느티나무, 탱자나무 등이 우뚝 서 있는 정원이 있고 정자 오른 쪽에는 300년 된 은행나무가 기세 좋게 하늘을 향하고 있다.

옥간정 입구는 계곡 쪽 내리막길에 있다. 수백년 된 느티나무가 오른쪽 언덕에서 계곡 쪽으로 거의 수평으로 꺾어져 지붕처럼 덮고 있고 왼쪽으로는 맑고 푸른 물이 소리치며 흘러내리고 있다.

이 계곡을 횡계라고 지은 이는 훈수와 지수 형제다. 형제는 우주 본체를 태허로 주장한 북송시대 철학자 장재의 학설을 신봉했는데. 장재의 호가 횡거였으므로 그의 호를 따서 횡계라 이름했다. '횡거를 기리는 계곡' 쯤 된다. 와룡암 위에 있는 육유재도 횡거 장재가 거처하던 곳의 이름인데 그대로 차용했다.

훈지 형제는 주자의 '무이구곡'을 흉내내 '횡계 구곡을 설정하고 경영하며 굽이마다 이름을 붙이고 시를 남겼는데 '횡계구곡가'다.

옥간정은 네 번째 굽이인 영과담(盈科潭) 위에 세워졌다. 영과는 물은 조금 팬 곳이라도 가득 찬 다음에야 다른 곳으로 흐른다는 뜻으로 '맹자'에서 따왔다.

아홉 굽이 중 네 번째 굽이에 대한 시, 사곡시는 맹자와 장자, 중국의 명시를 인용하고 있어 마치 '고문진보'를 펼쳐든 것 같다.

"사곡이라 광풍대 제월대 바위이니 / 바위가에 꽃과 나무 그림자 드리웠네 / 군자가 글을 이루는 일을 알고자 한다면/ 이 못에서 물이 채워짐을 보아야 하리라"
'횡계구곡' 중 4곡

이 시에 나오는 제월대와 광풍대는 정자에서 보면 계곡 건너편의 바위들이다.

훈지 형제는 정자 건너편 바위에 '제월대', '광풍대', '격진병', '지어대'라고 이름을 새겨놓고 저마다 시를 지어 성인들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후학들에게 전하려 했다.

제월 광풍은 송나라 시인 황정견이 주돈이라는 사람의 인물됨을 표현한데서 비롯됐다.

'흉회쇄락 지광풍제월(胸懷灑落知光風霽月)' "마음이 넓어 자질 구레 한 것에 거리끼지 않고 성격이 맑은 날의 바람과 비 개인 날의 달빛과 같다"라는 뜻이다.

이 시에 나오는 '쇄락'은 물이 시원하게 아래로 흘러가는 모습을 말하는데 조선시대 선비들이 왜 계류에 정자를 짓는 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계곡의 물은 그 근원이 높기 때문에 더러운 것이 모여들 수 없고 그 흐름이 빠르기 때문에 흐린 것은 머물 수 없으며, 돌이 있어 부딪치고 모래가 있어 걸러진다.(중략) 그 맑음은 자약하며 밤낮없이 만고를 지나도록 쉬지 아니하니 도를 닦는 선비가 마땅히 이를 보고 자강해 그 마음을 맑게 하고 그 천성을 회복해서 선을 머무르게 하고 떠나지 않게 하여야 할 것이다" 권근의 '양촌집'

▲ 글·사진 김동완 자유기고가

지어대의 지어(知魚)는 장자와 혜자의 고사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지어지락(知魚之樂)에서 빌려왔다. 형제는 이곳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훈지 형제는 이곳에서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동문록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이만 172명이 다. 영의정 조현명, 형조참의 정중기, 승지 장간 등 많은 명현과 석학을 배출했다. 이들 형제에게 조정은 여러 차례 벼슬길을 제의했으나 형제들이 끝내 고사했다.



■ 가볼만한 곳 - 영천의 명물 '오리장림'

영천시내에서 횡계로 가는 길목에서 영천의 명물 오리장림을 만난다.

'오리에 이르는 긴 숲'이라는 뜻이다. 숲은 도로 양쪽으로 갈라져 마치 시립하듯 펼쳐지는데 국도 확장공사를 하면서 숲을 관통해 버렸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제404호다. 그냥 숲이 아니라 수령 150년이 넘는 지름 2m, 높이 10여m 이상의 아름드리 거목 300여 그루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굴참나무와 은행나무를 비롯한 10여 종이 넘는 나무들이 우거진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단층 혼유림이라고 한다. 400년전에 조성됐다고 한다.

숲이 형성된 약 400여 년 전부터 이곳 주민들은 마을 수호와 방풍, 제방 보호 및 홍수 방지를 위하여 매년 정월 대보름날 자정에 제사를 올렸으며, 봄에 숲의 잎들이 무성하면 그 해에는 풍년이 온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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