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주방서 우위 노리는 시대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 늘기도 요리, 시도해 볼만하지 않은가

▲ 배경도 세명기독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나는 때때로 환자들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어디가 아프고 불편하니까 병원을 찾는 분들이지만 이런저런 상담을 하다보면 단지 증상만 가지고 대화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이 살면서 깨달은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전해주시기도 한다. 최근까지 내원하셨던 노년의 여성분도 그랬다. 몇 번인가 진료를 마치고 가실 때마다 내게 요리를 배우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이유인즉슨, 퇴직 이후로 아무 일도 안 하고 집에만 계시는 남편과 사시는 이 분은 스스로는 아무 음식도 안 차려 먹는 남편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계셨다. 식성이 워낙 까다로운 남편은 외식은커녕 배달음식은 입에도 안 댔다. 반평생 해온 부엌일에서 이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식사를 위해 하루 종일 자신만 의지하는 남편 때문에 생활의 제약이 많았다. 밖에 모임이 있어 나갔다가도 식사 때가 되면 즐거움을 등지고 혼자 집으로 가서 남편 식사를 해줘야 했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노년으로서 친구들처럼 삶을 향유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과 억울함, 남편을 향한 미움과 분노가 커져갔다. 그러니 내게도 노년을 생각해 지금부터 꼭 요리를 배워야 한다고, 그것이 나와 내 아내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동안 부엌과 요리는 여자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어져 왔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요리사는 대부분 남자였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않고, 실생활에서도 이제 남자들이 주방에서의 우위를 노리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이 최근 수년간 남자 요리사에 대한 직업적 인기도가 급상승했고, 방송계는 요리와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넘쳐났다. '요섹남(요리를 하는 섹시한 남자)' 신조어 출현이나, '집 밥' 열풍으로 식당가가 울상이라는 소문, 먹방이 예능의 대세로 자리 잡은 것 등이 이와 무관치 않다. 우리의 경우뿐 아니라, 북미와 유럽에서도 요리하는 남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 보다 완전하고 충실한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위해서란다.

세상 분위기도 그런데, 위의 그 환자분 말씀이 자극이 되어 나도 요즘 집에서 요리를 해보고 있다. 대단한 요리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내가 즐겨 먹는 찌개나 국 같은 간단한 요리들을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레시피 대로 따라 하는 정도다. 직접 요리를 하면서 깨닫게 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요리가 의외로 쉽고 재미있다. 검색해서 올라오는 수많은 조리법 중에서 가장 쉬워 보이는 것을 따라 하기만 해도 입맛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다. 또한 요리하는 과정이 말 그대로 오감을 즐겁게 하는 종합예술이다. 취미 생활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요리를 직접 해보면서 얻게 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가족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늘어서, 좋은 음식 재료를 고르는 법도, 상품 포장을 꼼꼼히 읽어봐야 국산 두부를 살 수 있다는 사실도 배우게 된다. 게다가 늘 주방이 좁다는 아내의 불평이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며, 요리 중에 온갖 냄새로 미각이 둔화된 상태에서 음식 간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내가 만든 음식에 대해 식구들이 빈말로라도 칭찬을 하지 않으면 못내 서운하다는 것 등 그 동안 너무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에 눈을 뜨게 된다. 요리를 통해 가족 모두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현재에도 장래에도 보다 훌륭한 가장으로서 살 수 있게 된다면 충분히 시도해 봄 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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