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인생사·낙향의 한 시로 승화시킨 명작의 무대

▲ 1770년에 후손들이 정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강정, 한국가사 불후의 명작인 사미인곡 탄생지로 유명하다.
송강정과 식영정, 환벽당은 송강 정철이 낙향의 한을 시가로 승화시킨 명작의 무대다. 정약용이 유배기간 동안 대한민국 정신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저술을 남겼듯이 정철은 주류에서 밀려난 설움을 주옥같은 시가로 승화시키며 우리 문학사의 스타시인으로 우뚝 섰다. 송강정에서는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식영정에서는 성산별곡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환벽당은 정철이 소년시절부터 청년으로 자라 벼슬을 할 때까지 11년간 머물면서 스승 김윤제에게서 공부를 배운 곳이다. 이 세 누정을 '정송강유적지'로 부른다.

전남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송강정은 정철이 49세때 지은 정자다. 그는 정적의 탄핵을 받아 대사헌 자리를 물러나 야인이 되자 언덕 위에 초당을 짓고 이름을 죽녹정이라 불렀다. 정자 인근의 들판이 죽록이었고 들판을 흐르는 강이 죽녹천이었다. 죽녹천은 현재 증암천으로 불리고 있는데 송강이라고도 불렸다. 죽녹정이 송강정이 된 데는 정씨 후손들이 쓰러진 정자를 다시 세우면서 이름을 바꿨기 때문이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3칸, 가운데 방이 있는 팔작지붕 구조다. 정면에는 송강정이라는 현판이, 북쪽 옆면에는 죽녹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정자 앞 마당에는 사미인곡 시비가 서 있고 키큰 소나무가 시립하듯 서 있다.



동풍이 건듯 불어 적설을 헤쳐내니 / 창밖에 심은 매화 두세가지 피었세라 / 가득 냉담한데 암향은 무슨 일인고 / 황혼에 달조차 베갯머리에 비치니 / 느끼는 듯 반기는 듯 님이신가 아니신가 / 저 매화 꺾어내어 님 계신데 보내고자 / 님이 너를 보고 어떻다 여기실고 - 사미인곡-

▲ 정철이 소년시절부터 청년으로 자라 벼슬을 할 때까지 11년간 머물면서 스승 김윤제에게서 공부를 배운 환벽당 전경.


그는 이곳에서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쓰며 임금에 대한 그리움, 권력에로의 복귀를 염원했지만 '세모엔 내 장차 떠나가리라 / 항상 원하는 물고기 되어 / 깊은 물속에 잠기고 싶다'라며 자연에 대한 찬탄과 고요한 생활에 대한 동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식영정은 담양군 지곡리에 있다. 소쇄원과 가깝고 한국가사문학관과 인접해 있다. 식영정이 있는 언덕은 풍광이 빼어나다. 광주호가 한눈에 들어오고 광주호의 지류인 자미탄이 발아래 굽어보인다. 지금은 아스팔트 도로이지만 식영정 절벽 아래는 본래 자미탄(창계라고도 함) 시냇물이 흘렀다고 한다. 자미탄은 주변에 자미(배롱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배롱나무꽃이 지천인 강과 언덕위에 솟아있는 정자, 상상만해도 아름다운 풍광이다. 자미탄은 수량이 풍부해 나룻배가 다녔고 무지개 다리가 있어 강 건너편에 있는 환벽당까지 다리를 통해 드나들었다고 한다.

식영정의 주인은 중종때 김성원이 낙향한 장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다.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에 단층 팔작지붕이며 한쪽 귀퉁이에 방을 두고, 앞면과 옆면을 마루로 깐 것이 특이하다.

당시 사람들은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 네 사람을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성산의 경치 좋은 20곳을 택하여 20수씩 모두 80수의 식영정이십영을 지은 것은 유명하다.

식영정 옆에는 '송강집'의 목판을 보존하기 위한 장서각을 건립했으며 이곳에서 성산별곡을 썼다고 해서 입구에 '성산별곡' 시비를 세웠다. '식영'은 '처음식영'(그늘에 처해 그림자를 숨긴다)에서 나왔다. '쓸데없는 욕심으로 이리저리 정신없이 나대다가 아무 소득도 없이 죽어가는 어리석음을 질타하는 말이다.

환벽당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다. 광주호의 상류 창계천을 사이에 두고 식영정과 마주하고 있다. 정철이 스승 김윤제에게 공부를 배우던 곳이다. 16살에 들어와서 27살, 관계에 나갈 때까지 환벽당에 머물면서 학문을 닦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철은 이 곳에서 김인후(金麟厚), 기대승(奇大升) 등 명현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학문과 시를 배웠다. 후에 김윤제는 그를 외손녀와 혼인을 하게 하고 그가 27세로 관계에 진출할 때까지 모든 뒷바라지를 해줬다. 정철은 성산별곡에서 용소와 조대를 추억하고 있다.

▲ 16세기 중반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지은 식영정. 환벽당, 송강정과 함께 정송강유적이라고 불린다.


오동잎 사이로 가을달이 사경(四更·밤 1∼3시)이 되니 천암만학(千岩萬壑·수많은 바위와 골짜기)이 낮인들 그보다 더 아름다우랴…. 한 쌍의 늙은 소나무를 조대(釣臺)에 세워놓고, 그 아래에 배를 띄워 가는대로 내버려 두니 붉은 여귀꽃, 흰 마름꽃 핀 물가를 어느새 지났는지 환벽당 용소에 뱃머리가 닿았구나. -성산 별곡 중-



▲ 글·사진 김동완 자유기고가

환벽당은 정면 3칸 측면2칸 구조이며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 양식이다. 왼쪽 2칸은 온돌방, 오른쪽 1칸은 대청으로 이뤄진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자안에는 송시열이 쓴 '환벽당' 현판이 있고 임억령, 조자이 등의 시가 걸려 있다. '환벽'은 '푸르름이 사방에 가득 둘렀다'는 뜻인데 실제로 언덕 위에 서 있는 정자는 소나무와 대나무에 둘러싸여 사철 푸르고 아름다운 경관이 자랑이다. 정자 아래는 자미탄 강물이 흐르고 강가에는 용소와 조대, 그늘이 넓게 드리운 나이 많은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 명승 제 107호로 지정될만큼 경관이 뛰어나다.






■ 가볼만한 곳 - 관방제림

죽녹원 앞으로 흐르는 시내가 영산강의 상류인 담양천인데 가로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면 관방제림이다. 1.8㎞ 정도 되는 거리에 푸조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 400여종의 나무가 들어서 장관을 이룬다.

이 숲은 원래 조선 인조때 수해를 막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홍수로 인한 제방의 붕괴를 막기 위한 호안림(護岸林)으로 조성한 것이다. 그 뒤로 철종 때인 1854년 연인원 3만명의 인력을 동원해 지금 같은 둑을 쌓고 나무도 심었다고 한다.

관방제림은 학술, 역사적인 가치가 높아서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됐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역에는 185그루의 노거수가 자라고 있는데, 수령 300~400년의 고목이 수두룩 하다. 지난 2004년 산림청에서 주최한 '제5회 전국 아름다운 숲 대회'에서 최고상인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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