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전설 기록…민중의 삶 오롯이 담아

▲ 지난달 23일 오후 종로구 인사문화고전중심에서 열리는 화봉현장경매에 출품된 삼국유사 정덕본 권3~5를 관계자가 살피고 있다. 이 삼국유사의 추정가는 15억 원이며, 시작가는 10억 원이다. 연합

삼국유사는 고려시대의 고승이었던 일연선사의 역사서다. 일연은 몽골의 태무진이 징기스칸으로 추대되던 해인, 1206년에 태어나 1289년에 열반하였다. 그가 이 땅에서 산 기간은 몽골고원(高原) 대막(大漠)에서 일어난 돌풍이 유라시아대륙을 휩쓸던 풍운과 겁난의 시대였으며,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하여 큰 고난을 겪던 격동의 시대였다. 일연은 26세에 제1차 몽골침입을 겪었고 이어 9차에 걸친 몽골의 침략을 몸소 경험했다. 일연의 나이 54세인 1259년이 되어서야 고려와 몽골간의 전쟁이 사실상 끝났고 일연이 65세 되는 해(1270년), 원종이 강화에서 나와 개경에 환도하고 고려는 몽골의 속국이 되어 정치적인 간섭을 받게 되었다. 원래 자존심과 긍지가 강하던 고려국으로서는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을 맞이하였고 수많은 문화재들이 불타거나 파괴되었다. 이처럼 일연은 그의 청춘과 장년을 통하여 몽골의 침략으로 인한 민족의 고통과 민족문화의 파괴현장을 직접 목도한 것이다.

일연은 본래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났으며,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수행 및 주석을 하였다. 마침내 32세 무렵, "중생의 세계는 줄지 않고 부처님의 세계는 늘지 않는다[생계불감 불계부증(生界不減 佛界不增)]"는 화두를 참구하다가 마음이 시원히 열리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에 스스로 "오늘에야 삼계(三界)가 몽환(夢幻)같고 대지(大地)가 무극(無極)임을 보았노라."고 노래하였다 한다. 78세에 국존으로 등극하였고 세수 84세에 이르러, 손으로 금강인을 맺고 입적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타의 오묘한 가르침을 구해 정진하지만,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이는 극소수다. 일연은 선문(禪門)의 종지(宗旨)를 깨친 대선사로서 국왕 이하 만조백관의 경배를 받은 국존(國尊)이었으며, 불교는 물론 세간의 학문에 정통한 일대의 종사(宗師)였다. '임제종'을 계승한 '가지산파'의 일원이면서 '조동종'의 가풍(家風)을 해설한 '중편조동오위(曹洞五位)'를 저술한 것을 보면, 그는 중국의 양대 선종을 한국적으로 통섭하고자 한 거인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그가, 자신이 체험한 민족의 좌절과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의 후손에게 조국의 긍지와 사랑을 심어주기 위하여 삼국유사를 격조 있고 유려한 필체로 집필하였다. 이는 북송의 정명도가 "도는 천지유형 밖에 통하지만, 생각은 풍운변태 속으로 들어간다(도통천지유형외(道通天地有形外) 사입풍운변태중(思入風雲變態中)"라 갈파하였듯이, 선사의 도는 이미 천지를 초월한 청정부동의 경지에 있으나, 생각은 조국의 아픈 현실에 깊이 파고들어가, 무력이 아닌 문필의 힘으로 민족의 얼을 일깨우고 정기를 북돋우고자 성심을 다한 자비심의 발로라고 보인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보충한다는 의미에서 '남은 이야기'다. 따라서 삼국사기에서 다루지 않은 많은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고조선과 단군의 존재, 가락국의 역대 왕력, 향가 14수의 소개, 수많은 설화와 전설을 기록한 일은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우리민족의 꿈과 애환을 담은 삼국유사는 민족의 유전자와 의식구조, 신앙과 사상, 역사·문학·민속·예술·인물군상과 민중의 삶의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민족문화의 보물창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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