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대대로‘충효’정신 실천해온 안동의 대표 명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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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효당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의 회고록인 '징비록'을 집필한 옥연정사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터다.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마을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 마을 곳곳엔 수백 년 간직해 온 역사와 문화가 있고 기품이 서려 있다. 조선시대 명재상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가가 이곳 하회마을에 있다. 후손들은 서애 선생이 유훈으로 남긴 '충효'정신을 최고 덕목으로 삼아, 풍산 류씨 가문을 중심으로 이 유훈을 귀하게 받들어살고 있다. 그 중심에 '충효당'이 있다. 1999년 하회마을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충효당을 먼저 들렀고, 충효당 대문 앞에 구상나무 한 그루를 기념으로 심었다.



풍산 류씨가와 충효당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평생을 청백하게 지낸 서애 선생이 풍산읍 서미리 삼간초옥에서 별세한 후 문하생과 유림들이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건립했다. 당호는 서애가 평
소'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말을 강조한 데서 유래했다.

풍산 류씨 가문은 '충효(忠孝)'를 가훈으로 삼아 실천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가문은 고려 말~조선 초에 풍산 류씨 류종혜가 안동에 들어와 적선한 이래로, 그의 5대손 입암 류중영(1515~1573)이 중심이 돼 류운룡(1539~1601)과 류성룡(1542~1607)을 비롯해 많은 학자와 훌륭한 신하들이 연이어 배출됐다.

류운룡과 류성룡 두 형제는 퇴계 이황의 퇴계학을 이어받아 서애학파라는 가학을 형성했다. 류성룡이 영의정이 되고 공신이 됨에 따라 풍산 류씨는 안동의 대표적인 명문가가 됐다.

류성룡의 8대손 류이좌는 "화(和)로써 어버이를 섬기면 효(孝)요, 경(敬)으로써 임금을 섬기면 충(忠)이다"라는 의미의 '화경당(和敬堂)'을 당호로 그 유훈을 실천하고자 했다. 남촌댁에서는 사당 담벼락에 '충효' 글자를 새겨 항상 이를 생각하면서 실천하려 했다. 미수 허목(1595~1682)의 글씨로 알려진 현판이 충효당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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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연정사와 징비록

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이 관직에서 물러나 임진왜란에 대해 기록한 '징비록'을 쓴 장소이다. 이곳은 서애가 서당을 짓고자 했으나 살림이 빈곤하자 탄홍스님이 10년 간 곡식과 포목을 시주해서 완공했다고 전해진다. '징비록'은 류성룡이 임진왜란 7년의 전란을 기록한 수기로,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에 관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으로 꼽힌다.

15대 종손 류창해 씨도 어린 시절 옥연정사에서 보낸 시간들을 소중한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 때 서애종가에도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조부인 류시영 옹이 두 차례 국회의원에 출마해 가산이 거의 탕진되고 말았다. 이것은 아랫대에 미쳐 종손은 10여 년간 옥연
정에서 생활하며 새벽에 조모의 농사일을 도왔다고 한다. 아랫대엔 아픈 추억이었다. 종손은 지금도 가끔 옥연정에 들러 옛 시간들을 회 상해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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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창해15대종손

40년만에 길사 올린 류창해 종손, 이혜영 종부

안동의 종손들은 목숨과도 바꾸며 지켜온 자신들의 세계관과 이상을 그들의 자식들이 생활 속에 실천하도록 가르쳤고, 문중이란 공동체를 통해 오늘날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충효당 종가 대청에서는 서애 류성룡의 15대 종손인 류창해(59)씨와 종부 이혜영(56)씨가 충효당의 새 종손이 되었음을 고하는 길사(吉祀)가 봉행됐다. 40년 만에 치러진 보기 드문 제사였다. 길사를 지내는 가장 큰 목적은 종가를 지켜가기 위함이다.

이날 길사에는 많은 후손 및 문중원 그리고 선조의 세의(世誼)를 앞세운 후예들이 망라해 대거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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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종가의 후손들

"충효 밖에 사업이 없다"는 서애의 유언이 한국의 대표적 방위산업체인 풍산그룹을 탄생하게 했다. 서애의 12대손인 류찬우 회장이 바로 창업자이다. 그는 "풍산의 목표는 자주국방이다. 서애 할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주국방에 앞장서는 것이 풍산을 세운 이유이다.

돈을 벌려고 했으면 투기를 하는 게 더 손쉽겠지만 충효보다 더 큰 사업은 없다."고 생전에 말했다.

류성룡의 직계 후손들은 지금도 재계·정계·학계 등 폭넓게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13대 직계 후손인 풍산그룹의 류진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류 회장은 서애선생기념사업회를 통해 '국역 서애전서'를 출간하고 '징비록' 영역본 발간 및 KBS드라마 징비록을 후원했다. 또한 육군사관학교 체육관인 '서애관' 증·개축, 해군 이지스 구축함인 '서애 류성룡함'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는 부친인 고 류찬우 전 회장의 창업정신을 이어 받은 것이다. 12대손인 류우익 전 통일부 장관은 2009년 주중대사로 일할 당시 한국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징비록'을 선물해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이 밖에 13·14대 국회의원과 3개 은행장을 지낸 류돈우 전 한국주택은행장, 류한섭 전 신세계백화점 회장, 유성기업의 류홍우 회장, 류상돈 한국투자증권 사장도 서애 선생의 후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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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효당 전경

종손 종부의 삶

보물 414호인 종택 '충효당'을 지키고 있는 서애 15대 종손 류창해 씨는 대구에서 회사생활을 하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최근 아내와 차종손 승환(30)씨도 함께 안동으로 내려왔다. 류창해 종손은 종손의 주된 의무인 봉제사(奉祭祀)는 물론, 노모인 14대 종부 최소희(88) 여사를 모시고 있다. 문중의 대소사를 챙기며 유림활동에도 발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그는 불천위 만큼은 전통방식대로 새벽제사를 고수한다. 이제까지 지켜오던 것을 바꾸면 오히려 조상께 미안한 마음만 커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충효당 등 유형의 문화재도 중요하지만 제사 등 무형의 문화가 서애종가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오종명 기자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안동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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