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변화를 타고 대업을 이루다

삼국유사 기이편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일연선사의 서문 가운데 천명을 받은 제왕이 신룡(神龍)처럼 일어나, 한 나라를 창업하는 모습을 서술한 글을 음미하기로 한다.

일연은, “제왕(帝王)이 장차 일어날 때 부명(符命)이나 도록(圖錄)을 받아 반드시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있은 연후에야 능히 큰 변화를 타고 대기(大器)를 잡고 대업(大業)을 이룰 수 있었다(帝王之將興也에 膺符命하고 受圖籙하여 必有以異於人者하니, 然後에 能乘大變하고 握大器하여 成大業也니라).”라며, 간결하게 표현하였지만, 이 글이 담고 있는 뜻은 깊다.

먼저 부명과 도록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는 고려시대에 유행한 도참사상의 한 표현이기도 한데, 제왕의 창업은 하늘의 운수에 따른 것이라는 순천사상(順天思想)의 한 예시다. 사서(史書)를 읽어보면, 이 같은 도참의 기록이 간혹 있다. 중국의 춘추시대 진(晋)나라 문공이 다스리던 진창 땅에서 진보(陳寶)라는 꿩 두 마리가 나타났는데, 암컷을 얻으면 패자(覇者)가 되고 수컷을 얻으면 왕자(王者)가 된다 하였다. 문공이 진창 북판성에서 진보를 발견하고 진보사(陳寶祠)란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과연 진문공은 제환공을 계승하여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한편 수컷은 낙양으로 날아갔는데, 대략 650년 뒤에 낙양의 유수(劉秀)가 일어나 후한을 세우고 광무제가 되었다. 진(秦)나라는 진양공(秦襄公) 이후로 서쪽하늘의 백제(白帝)에게 제사를 올려 나라의 융성을 빌었는데 어쨌든 진시황제가 중국의 서쪽 끝에서 발흥하여 천하를 통일하였다. 한(漢)나라를 창업할 때는 남쪽 하늘을 맡은 적제(赤帝)의 아들인 유방이 서방의 진나라를 상징하는 거대한 백사(白蛇)를 참하고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문이 돌았고 실제 한나라는 붉은 색을 선호하였다. 수나라 말기에 이씨(李氏)가 일어난다는 도참이 떠돌았는데 실제 이연과 이세민이 당나라를 세웠다. 고려도 마찬가지다. 삼국사기 최치원열전(崔致遠列傳)에, 최치원이 지은 "계림은 누른 잎이고 송악은 푸른 소나무(鷄林黃葉 松嶽靑松)"란 구절이 있는데, 신라가 쇠하고 고려가 흥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궁예시대에 나타난 옛 거울에 송악에서 임금이 나와 신라를 얻고 압록강까지 취할 것이라는 147자의 글자가 나왔다.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도 도명(圖命)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이성계가 일찍이 지리산 토굴에서 임금이 되리란 도록을 얻었으며 꿈에 나라를 다스리는 금척(金尺)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근거하여 정도전이 태조에게 수보록·몽금척이란 악장(樂章)을 지어 바쳤다.

다음, 변화를 탄다는 것을 인사(人事)의 기회를 맞춘다는 것으로 세상일을 처리할 때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영웅은 조용히 때를 기다릴 줄도 알고 유사시 결단하여 일어설 줄도 알아야 한다. 이 일은 어렵고도 중요하다.

대기(大器)를 잡는다는 것은 제왕의 사업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와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무엇보다 임금의 자리, 그것이야말로 천하를 향한 사업을 일으키는 큰 그릇이리라.

끝으로 대업(大業)을 이룬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인의 대업은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요 영웅의 대업은 나라를 일으키고 일세를 평정하는 것이다. 범부의 사업과는 규모가 다르게 때문에 대업이라고 했다.

윤용섭 삼국유사목판사업본부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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