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금오산 도립공원 내…호수 위 올레길·도선굴 등 볼거리 가득

채미정 입구.
야은 길재 선생을 기리는 채미정은 구미 금오산 도립공원 주차장 맞은편에 있다.

채미정이 위치한 구미 금오산은 경관이 빼어나고 힘과 기상이 넘치는 산이기도 하여 구미시민들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사랑받는 산이기도 하다.

금오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파한 아도화상이 이곳을 지나다가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것을 보고 금오산이라 불렀다 한다.

채미정은 길재를 기념한 정자로써 백이와 숙제의 고사에서 유래됐으며, 고사리를 캔다는 뜻으로 중국 주나라의 전설적인 형제 성인 백이와 숙제에 관한 고사에서 유래된 정자다. 이런 유래를 가진 채미정이란 이름은 결국 길재의 충절이 백이·숙제에 비견할 만한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채미정은 1986년 10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에 명승 제52호로 변경되었다.

고려 후기의 충신이자 학자인 길재(1353~1419)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 채미정을 건립하였다. 길재의 호는 야은(冶隱)·금오산인(金鰲山人)이다.

길재는 이색·정몽주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히고 성균관 박사가 되어 유생들을 가르쳤다. 저서에 ‘야은집(冶隱集)’과 언행록인 ‘야은언행습유록(冶隱言行拾遺錄)’이 있다.

채미정.
채미정은 벽체가 없고 16개의 기둥만이 있는 정자다. 채미정 흥기문을 들어서는 사람들은 좋은 기운을 받아 내리 흥할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채미정 한쪽에는 박태기나무가 있는데 서양에서는 배신한 유다가 목을 맨 나무라고 해 유다나무라고 불린다. 꽃말이 배신이라는데 이 나무가 채미정 안에 있는 건 길재 선생의 고려에 대한 절개랑은 좀 거리가 있는 듯하다.

길재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인데 고려가 망하자 조선의 신하가 되기를 거절하고 고향에 돌아가 은거생활을 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이방원이 태상박사에 임명하였지만 두 임금을 섬길 수는 없다고 거절한 것이다.

길재는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며 자신의 부귀영화에 관심을 두지 않고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는 것에 일생을 바쳤기에 그를 따르는 학자들이 많았다. 김숙자(金叔滋),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등이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채미정을 둘러보고 나면 인근에 또 다른 볼거리도 많다. 호수 위에 뜬 올레길과 금오산성, 도선굴, 금오산 마애보살입상, 메타세콰이어길과 적송길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야은 길재의 회고가(懷古歌).
금오산성은 규모가 매우 큰 축에 속한다. 산성이 놓인 위치가 일단 험한 암석을 밑으로 두른 천혜의 고지대이고, 돌을 쌓아 두른 길이도 내·외성을 합쳐 6.3㎞나 된다.

도선굴은 신라 말기의 스님이자 풍수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참선하여 득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길재가 학문과 명상을 했다는 사실은 기록으로 전해지므로 도선굴보다는 야은굴이라는 명칭이 더 합당하다는 얘기도 있다.

호수 위에 뜬 올레길은 금오산 자락의 산중호수인 ‘금오지’를 한바퀴 도는 산책길이다. 2.7km 중 일부가 나무 데크로 되어 있어 마치 물 위를 걷는 것 같다. 산책로를 따라 수변식물원, 생태습지원도 조성돼 자연생태환경 체험로 역할도 하고 있다.

또한 금오산 중턱에 있는 대해폭포는 명금폭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명금이라는 이름은 금오산을 울린다는 뜻이다. 그만큼 폭포 소리가 우렁차서 붙여진 이름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