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딛고 희망을 쐈다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실패, 월드컵대표팀 탈락, 아시안게임 우승 좌절….

나부끼는 머리카락이 사자갈기 같다 해서 ‘라이언킹’이라 이름 붙여진 이동국(26·광주상무). 19살에 불과하던 지난 98년 프랑스월드컵에 최연소대표로 출전하며 축구인생을 활짝 열었던 그가 지난 3년 간 갈기를 축 늘어뜨려야만 했다.

특히 월드컵 대표 엔트리 제외는 너무나 큰 상처였다.

축구 황제를 꿈꾸던 한 젊은 청춘이 소리 없이 무대 뒤로 사라지는 듯 했다.

축구가 싫었고, 사람들이 미웠다. 그 많던 팬들과 친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혼자였다. 술로 지새우며 끝없이 번민하고 방황했다.

‘한국축구 기둥’입네 하며 연일 대서특필하던 언론의 시선도 싸늘했다.

“완전 한물 갔네”, “거봐, 이동국은 안 돼”라는 수군거림이 귓전을 맴돌았다.

‘아! 이대로 무너지는가!’원통하고 분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사랑하는 부모님의 근심 어린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할 수 있어,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2003년 봄, 이동국은 긴 방황을 뒤로하고 상무에 입대했다. 군대는 그에게 잘 지은 보약과 같았다. 생명수였다. 절제된 군 생활이 영혼과 몸을 정화시켰다. 인내와 관용, 여유도 덤으로 얻었다.

‘내가 최곤데, 나 없이 잘 되는 가 봐라’며 거만해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상무의 비 인기 종목 선수들이 음지에서 땀을 흘리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대충해도 스포트라이트만 받아온 자신이 민망했다. 여태 헛살았다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마음의 안식을 되찾은 이동국은 훈련에 매달렸다. 포철동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화를 신은 이후 가장 많은 땀을 흘렸다. 잡념이 생길 때마다 바벨과 씨름하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군살이 빠지면서 몸이 가벼워졌다. 자연히 나태한 마음도 사라졌다.

전화위복. ‘게으른 천재’가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뜬 것이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과의 만남도 행운이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물론 전임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에게도 외면 받았던 그였다.

하지만 한국대표팀 새 사령탑 본프레레 감독은 튀어나온 앞니만큼이나 날카로운 시각으로 ‘물건’을 눈여겨봤다. ‘새 부대’를 채우기 위해 ‘새 술’도 필요했으리라.

천신만고 끝에 대표팀에 복귀한 이동국은 이를 악물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여기서 미끄러지면 끝이다.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부상에서 회복한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다져진 몸은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본프레레호 승선 이후 곧잘 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주위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결정적인 한방이 필요했다.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지난해 12월 19일. 상대는 자신을 매몰차게 내쫓았던 ‘전차군단’ 독일이었다. 눈물을 안겨준 브레멘 소속의 ‘독일병정’ 클로제가 거만한 몸짓으로 위세를 한껏 뽐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얄미웠다.

1-1로 팽팽히 맞서던 후반 26분, 박규선의 크로스가 머리위로 날아왔고 독일 수비수와 한바탕 몸싸움을 펼친 뒤 둘러보니 볼이 눈앞에서 크게 퉁겨 올랐다. 지체 없이 몸을 돌려 강하게 때렸다.

볼은 절묘한 궤적을 그으며 당대 최고 골키퍼인 올리버 칸이 버틴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짜릿했다. 난생 처음으로 유럽팀을 상대로 터뜨린 골이어서 기쁨이 배가됐다. 본프레레의 황태자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네티즌들은 61%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올해 최고의 골로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를 외면한 코엘류 감독조차 “환상적인 골”이라며 중용하지 못한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부활이다. ‘라이언킹’이 황금갈기를 곧추 세우며 포효했다. 지난날의 고통은 어느새 눈 녹듯 사라졌다.

긴 좌절과 방황을 접고 이동국이 마침내 희망의 노래를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눈물을 보이긴 싫다. 앞만 보고 한발씩 다가갈 뿐.

2005년은 이동국에게 희망의 시간이다. 한국을 월드컵본선으로 이끌고 포항스틸러스를 K리그 정상에 올려놓고 싶다.

한국축구 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팬들의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은 축구스타 이동국. 그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반증이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동국이 한국축구와 프로축구 부활이라는 벅찬 희망을 안고 2005년 새해를 힘차게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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