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더 무서웠다"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 박종열(70) 할머니는 지난 12일 오후 집에서 저녁을 먹던 중 세상이 뒤집어 지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바닥이 꿀렁꿀렁 거리더니 창문이 수 초 간 덜컹거리며 집 전체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텔레비전마저 바닥으로 떨어지려고 하자 큰일 났다 싶어 집 밖으로 뛰쳐나와 인근 정자로 대피했다.
이곳에는 지진에 놀라 대피한 주민 수십 명이 모여 서로 불안감을 달래고 있었다.
여진이 잠잠해진 자정 이후까지도 불안감에 떨다 박 할머니는 다음날인 13일 새벽 1시를 넘어서야 귀가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자는 둥 마는 둥 거의 날밤을 샜다.
그도 그럴 것이 박 할머니가 살고 있는 동네인 나아리는 월성 원전과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마을이다.
박 할머니는 “주변에서 지진 때문에 난리가 났다면서 원전은 이상 없느냐는 전화가 계속 왔다”면서 “지진도 두려웠지만 원전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더 무서웠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오후 7시 44분과 8시 32분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1과 5.8의 지진 여파로 월성 원전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공포에 떨며 밤잠을 설쳤다.
1978년 이후 국내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자 주민들의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은 듯했다.
13일 오후 나아리 마을회관에는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씩 모여 지진 당시 있었던 얘기를 나누며 분노했다.
주민들은 “다른 데는 뉴스에도 나오고 그러는 데 양남 여기는 아무 얘기도 안 나온다”면서 “지진으로 가스가 셌는지 이상한 냄새도 났는데 확인하러 오는 곳도 없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마을에서 1㎞가량 떨어진 곳에 월성 1·2·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 등 원전 6기가 밀집해 있지만 계속되는 여진에도 원전 측에서 아무런 소식도 받지 못한 채 뉴스를 통해 원전 정지 소식을 전해 들은 주민들은 원전의 방식에 분노하기도 했다.
홍준표 나아리 마을이장은 “지진 난 뒤 방송이라도 해서 주민들을 안심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며 “원전 측과 연락을 할 비상연락망도 없어 마을 주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고 원전의 대처를 비판했다.
이어 “이장 등 단체장들에게 문자가 제공되긴 했지만, 지진이 발생한 지 1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면서 “이렇게 지역의 안전은 무시하면서 신규원전이니 뭐니 설치한다고 떠들고 있는데 무슨 신뢰가 되겠느냐”며 날 센 비판도 서슴치 않았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지난 7월 울산 인근 동해에서 발생한 지진 이후 경주시와 시의회에서 국민안전처의 문자발송와 같은 자동으로 주민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전송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었다”면서 “아직 자동 문자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아 직원들이 사태 파악 후 일일이 문자를 작성해 보내다 보니 문자 발송이 늦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어 “지진행동 매뉴얼에 따라 위기경보를 발령해 긴급상황에 대비하고 있다”며 “월성, 한울, 고리, 한빛 등 4개 원전본부 등 전체 점검한 결과 시설 안전에는 이상 없이 정상 운전상태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수력원자력은 2차 지진이 발생한 뒤 약 3시간만인 12일 오후 11시 56분부터 1·2·3·4호기의 가동을 순차적으로 수동정지했으며, 지진에 따른 안전점검을 위해 월성원전의 가동을 수동정지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