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장 사과도 못받아 내…‘정세균 방지법’도 불투명

새누리당이 정기국회 파행 1주일 만에 강경 기조를 접고 2일 회군한 것은 파행이 길어지는 데 따른 부담감이 작용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처리를 ‘날치기’로 규정하며 지난 주 시작된 국정감사를 전면 거부했지만, 이번 주까지 상황을 매듭짓지 못하면 비판 여론이 아무래도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 집중될 가능성을 의식한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번 파행 국면이 이번 연휴 기간에 중대 고비를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이정현 대표의 단식 기간이 길어지면서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해임건의안 강행 처리를 이유로 새누리당이 사퇴를 요구해 온 정세균 국회의장의 출국도 임박했기 때문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몸 상태는 임계점을 넘었다”며 “국민의 뜻에 무조건 순명(順命)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단식을 중단하고 곧바로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양측이 벼랑 끝에 몰리면서 새누리당의 단식 중단과 국감 복귀, 정 의장의 입장 표명을 적절히 배합한 ‘출구전략’이 가동된 셈이다.

정 의장은 새누리당이 국감 복귀를 선언한 직후 “나라가 매우 어려운 시기에 국회가 걱정을 끼쳐드린 데 대해 국회의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누리당으로선 강경 투쟁을 위한 ‘단일대오’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미 김영우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29일 국방위 국감을 정상화했으며, 몇몇 의원도 각자 소속된 상임위 국감에 참석했다. 비주류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늦어도 이번 주 초에는 국감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새누리당이 위원장을 맡은 일부 상임위에선 야당 주도의 단독 국감도 진행됐다.

정 의장을 형사 고발하고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데 이어 의장공관 앞 농성, 방미 일정 및 가족사에 대한 폭로 등 다분히 감정 섞인 대응에 나선 것도 결국 이처럼 안팎에서 나타나는 ‘균열’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던 시도로 여겨졌다.

새누리당은 ‘링 밖에서의 투쟁’을 중단하고 국회로 복귀하는 대신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확보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속칭 ‘정세균 방지법’) 처리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국회 파행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다 명확히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더는 미룰 수 없다”며 “‘정세균 방지법’이란 네이밍을 철회할 의사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법 개정안 처리에 순순히 응할지는 미지수다. 새누리당이 정 의장에 대한 형사 고발 등을 당장 취하하지 않는 것 역시 이를 지렛대로 삼아 국회법 개정을 압박하려는 용도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은 투쟁 구호로 내세웠던 정 의장 사퇴를 관철하지 못했다. 애초 실현 가능성이 희박했던 목표였다. 정 의장의 입장 표명도 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을 놓고 새누리당에 사과한 게 아니라 국회 파행에 대한 입법부 수장으로서의 대국민 유감 표명이었다.

때문에 당장 손에 쥔 구체적 성과 없이 다소 허무하게 말머리를 돌렸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국감 복귀를 결정한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서 홍문표 의원은 “지도부가 일관성 없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며 “과연 국민에게 투쟁의 의미로 뭘 보여줄 것이냐. 아무것도 없지 않으냐”고 따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8일 이 대표의 국감 복귀 요구가 의총에서 거절당하고, 이후 득세한 강경파가 정 의장과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으르렁대더니 돌연 국감 복귀를 선언하는 등 냉·온탕을 오가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당발 국정감사 보이콧’이라는 초강수를 던짐으로써 내년 대선을 앞둔 여소야대 구도에서 ‘거대 야당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고,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를 거부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더는 효과를 거둔 점은 자평하고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1주일간 새누리당의 문제제기를 통해 김재수 장관이 생사람이었다는 것도 국민에게 인식시켜줬고, 국회의장이 중립성을 훼손하고 당파적 편파적으로 국회의사를 진행한다는 것도 국민이 알 기회를 줬고 개선 필요성의 자각도 일깨워줬다”고 말했다.

또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등 현 정권에 불리한 이슈가 결과적으로 다소 뒤로 밀렸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국감 출석도 사실상 무산됐다.

그동안 ‘웰빙 정당’의 이미지에 ‘모래알 정당’이라는 자조가 나왔던 새누리당이 1주일간의 투쟁으로 전투력을 입증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게 됐다는 자체 평가도 있다.

다만 앞으로 국감 복귀론과 강경 투쟁론, 김 위원장에 대한 징계 여부 등을 둘러싸고 당내 주류와 비주류, 강경파와 온건파의 견해차가 노출되면서 당내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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