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날씨 소식 전하는 당당한 전문직…아침뉴스, 스마트폰 앱, SNS라이브 방송 등 맹활약

이시정 대구MBC 기상캐스터
인기 드라마 ‘질투의 화신’ 속 비정규직 기상캐스터 표나리(공효진)는 지질한 캐릭터다. 홈쇼핑 시연모델에서 시작해 아나운서를 꿈꾸는 비정규직 기상캐스터인 그녀는 막장 같은 삶을 살면서 방송국 허드렛일도 모자라 아나운서와 기자의 눈치만 보면서 잡무를 대신한다. 이 때문에 기상캐스터라는 특정 직업을 비하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표나리와는 다르게, 대구MBC 이시정(28) 기상캐스터는 “실생활에 중요한 날씨 뉴스를 정확하게 전하는 당당한 전문직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했다.

TV 브라운관에서, SNS에서 지역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이시정 기상캐스터를 만났다.

▲강원도 소녀의 꿈, 쇼핑호스트

방송 경력 만 5년을 꽉 채운 28살의 이시정 캐스터는 치악산으로 유명한 강원도 원주에서 자랐다. 수도권과 같이 문화생활을 즐길만한 게 많지 않던 고교 시절 TV 홈쇼핑에 매료됐다. 물건을 직접 보지 않았는데도 쇼핑호스트의 말만 듣고도 지갑을 열었다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연기를 전공한 여고생 이시정의 꿈이 됐다.

대학 진학 후 실내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버스로 왕복 3시간을 서울과 원주를 오가면서 쇼핑호스트를 양성하는 학원에 다녔다. 학원비는 아르바이트비로 충당했다.

하지만, 22살의 어린 나이의 쇼핑호스트를 받아주는 방송사는 없었다. 경력 쌓기에 돌입했다.

라디오 교통 리포터에서 시작해 한국도로공사 교통정보센터 TV 교통캐스터로 변신했다. 지상파와 케이블TV 뉴스 중간에 실시간으로 교통정보를 전하는 매개체로 맹활약을 펼쳤다.

폐쇄회로(CC)TV가 보여주는 고속도로 상황을 대본 없이 애드리브로 실시간으로 전했고, 각종 돌발 교통 상황에도 여유 있게 대처하는 나름의 비법도 만들었다.

책임감, 순발력, 체력 등 끊임없이 자기 관리를 해온 결과 이뤄낸 성과였다.

이시정씨는 “학창시절부터 10년을 목표로 세운 쇼핑호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은 아직 유효하다”며 “방송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들끓고 있기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TV, SNS 넘나드는 원더우먼

이시정 기상캐스터는 1년 5개월간 대구MBC 보도국 소속으로 아침 뉴스를 통해 지역민들에게 소중한 날씨 정보를 전하고 있다. 새벽 5시 이른 출근으로 새벽잠을 일에 모두 반납하지만, 길게는 1분 30초, 짧게는 1분 10초짜리 기사를 작성하고 그래픽까지 챙기려면 오히려 정신이 더 또렷해진다. 날씨 상황과 계절, 절기에 맞춘 의상과 머리 스타일, 메이크업까지 준비하고 또 준비한다.

그녀는 “막상 기사를 작성해놔도 기온 등의 변화가 있어서 새로 수정한 원고를 단시간에 외워야 하는 등 날씨 뉴스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면서 “교통캐스터 시절 몸에 밴 순발력과 책임감이 버팀목이 돼주는 것 같다”며 웃었다.

아침 7시 20분과 7시 40분 날씨 뉴스를 전했다고 해서 일과가 끝나는 게 아니다.

지역의 작은 행사까지도 찾아가 현장에서 전하는 저녁 뉴스데스크의 ‘동네 한바퀴’ 코너와 매주 일요일 저녁 뉴스데스크에 소개하는 시청자 쌍방향 소통 프로그램인 ‘모바일M밴’ 아이템 선정부터 현장취재, 스튜디오 녹화까지 소화한다. 현장을 누비는 리포터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최근에는 페이스북 페이지인 ‘대구MBC 탐구생활’을 통해 매일 아침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출근길 날씨 정보를 라이브로 알려주고 있는데, 엄청난 반응을 얻고 있다. 딱딱하게 전할 수밖에 없는 뉴스 속 모습과는 달리 영상과 댓글로 서로 소통하며 날씨 소식을 전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이시정 기상캐스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방송을 통해 뉴스나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 옷차림과 표정 하나까지도 모두 날씨와 관련돼 있기에 기상캐스터라는 직업인으로서 사명감도 생겼다”면서 “최근 잇따른 지진은 자주 접하지 못한 분야라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인기 드라마에서는 아나운서 시험에서 떨어진 표나리가 기상캐스터가 됐고, 기상캐스터가 앵커나 아나운서를 뒤치다꺼리하고, 외모나 몸매를 강조한 의상을 강요받는 것으로 비춰진 것에 대해 상처도 받았다는 이시정 기상캐스터.

그녀는 “날씨를 전하는 전문직업인으로서 기상캐스터가 제대로 알려지길 바란다”며 “내가 가진 재능을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봉사, 직업 특강 등의 봉사를 하면서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있다. 내가 가진 밝은 목소리와 표정이 매일 아침 날씨 뉴스를 접하는 시민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로 퍼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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