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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호순병원 원장

내 이름은 ‘곽호순’이다. 그리고 남자다.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다. 그리고 중년의 가장이다. 이것이 나의 정체(identity)다. 나는 이렇게 나의 정체에 관해얘기할 때 항상 나의 이름을 먼저 내세운다. 나는 내 이름이 자랑스럽다.

지금은 ‘나는 내 이름이 자랑스럽다’고 얘기 하지만 사실은 내 이름이 너무 싫고 부끄러워서 내 청춘의 성장기에 많은 갈등을 했다고 고백하는 편이 오히려 솔직한 표현이다. 내 사춘기 매우 민감하던 시절에 나는 내 이름이 크게 불리어 지는 것이 정말 싫고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왜? 다른 사람들은 내 성(姓)인 ‘곽’이 불리어질 때 대부분 ‘박’으로 듣는다. 그것도 흰 교복 칼라에 검은 갈래머리 단정히 빚은 여학생들과 같이하는 모임에서, 그 중요한 자리에서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불리어지는 내 이름은 ‘박호순’으로 듣기 딱 알맞다. 대부분 사람은 ‘박호순’으로 듣고 게다가 그 이름을 거꾸로 바꾸어 ‘순호박’으로 생각을 하면서 놀릴 것으로 나는 (근거 없이) 믿었다. 그때 내가 마음속으로 찍어둔 여학생의 입가에 번지는 알 듯 모를 듯한 야릇한 미소, 아! 나는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홍당무 같은 얼굴로 내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姓)인 ‘곽’은 내가 피할 방법이 없으며 ‘순’ 자 역시 우리 가문의 항렬자라 우리 형제들은 다 ‘순’ 자를 쓴다. 그러니 중간에 어떤 글자가 들어와도 여자 이름 같은 느낌은 피할 수 없지 않은가.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이름이었지만 그러나 나는 그 이름이 싫었다.

그랬다. 나의 사춘기는 별명이 따로 없고 항상 ‘순호박’이라는 별명만 들으며 살아와야만 했었다. 그러나 내가 어쩔 도리가 없었지 않은가? 기껏해야 내 이름이 불리어 질 때 제발 발음을 분명히 해서 ‘곽’으로 불리어지기를 기도하거나 내 이름을 내가 직접 적을 때 ‘순’자 위에 작은 줄을 그어 ‘순’자인지 ‘준’자인지 모르게 애매하게 적는 방법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이 ‘애매하게’ 반응 하는 것이야 말로 노이로제 환자들의 특징적 반응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이름에 있어서는 매우 애매했다. 나는 ‘내 이름 석 자를 걸고…’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다. 나는 내 걸 이름 석 자인 ‘곽호순’에 온갖 갈등과 열등감과 부끄러움을 가지고 내 청춘의 성장기를 보냈으니까.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니 상황이 바뀌어졌다. 오히려 내 이름이 사람들 기억에 남아 쉽게 불리어지고 과거의 사람들도 ‘순호박’하면 나를 기억해 내고 그리고 반가워하며 살갑게 대하고, 내가 그를 기억하지 못해도 그가 나의 이름을 기억해 주니 곽호순이라는 내 이름 석 자가 은근히 특색 있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생각을 바꾸니 내 이름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아! 드디어 나는 극복하였다, 내 이름으로 인한 부끄러움과 갈등을. 내 약한 과도기적 자아(自我)가 내 이름이 멋있게 불리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내 존재에 대한 불안감으로 부끄러운 반응과 함께 갈등을 느껴 왔으리라(심리분석적으로 판단하건데). 그러나 그것이 극복되면서 내 이름이 자랑스러워지니 생각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주체성 회복에 큰 치료가 됐던 것이었다.

오늘도 많은 갈등과 열등감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는 내담자들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내 이름에 대한 갈등을 극복한 얘기를 한다. 단점이 바뀌어 큰 장점이 되게 생각하기를, 그리하여 마음의 상처가 치료되고 건강하고 자신 있는 자아를 찾기를 기대하면서 ‘그래 나는 순호박이다!’라고 자신 있게 얘기한다. 이제 내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곽호순병원 원장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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